‘소아암환우돕기 제10회 서울시민마라톤대회’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염명용 씨(56·사진)의 목에 구릿빛 메달 하나가 걸렸다. 42.195km를 완주한 그는 “이게 100개째네요. 이전에 받았던 완주 메달들은 집에 있는 박스에 던져 놓곤 했는데, 이번 메달은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오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등에는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본부’라는 검은색 글씨가 전화번호와 함께 적혀 있었다.
그의 몸에는 신장 하나가 없다. 2007년 6월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떼어줬다. 초등학교 시절 소아마비를 앓던 동네 친구가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서 ‘기회가 되면 꼭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염 씨는 1996년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렸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장기 기증자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장기 기증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가진 것 없는 저도 나눌 게 있더라고요. 건강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 있었죠.”
당장 생계를 걱정한 아내가 반대했지만 염 씨는 아내를 설득해 수술대 위에 올랐다. 2007년 7월 초 실밥을 뽑은 그는 그해 9월 중순경에 마라톤 풀코스를 뛰겠다고 나섰다. 학창 시절 육상부에서 꿈꿨던 마라톤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1999년부터 다시 마라톤을 해 왔던 터였다.
신장 기증 후 “괜찮으냐”고 물어오던 주변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염 씨의 신장을 받은 환자가 건강을 되찾은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던 아내도 “그러다 정말 큰일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본부 관계자도 “무리하면 안 된다”고 말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딱 한 번만 시험 삼아 뛰어 보고 이상이 있으면 바로 그만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결국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염 씨는 신장을 기증하기 전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1년에 평균 6번을 뛰었지만 그 후에는 1년에 10번 정도 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 염 씨는 “장기를 기증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힘든 운동을 할 수 있고 신장 기증 후에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교수는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본인의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신장을 기증했다고 해도 마라톤 등을 하는 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100번째 완주한 그의 다음 목표는 앞으로 7년 안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 200회를 달성하는 것. 비록 지금도 시급으로 최저임금 4860원을 받으며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는 더 많이 달리길 원한다. “달리는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기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만 줄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