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시대]<3·끝>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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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6일 03시 00분


“청년실업은 불경기 탓… 정년 연장과 직접 연관성 낮아”

“경기가 나빠져 취업문이 가뜩이나 좁아진 상황에서 고령근로자의 정년까지 연장되면 신규 채용은 더 줄어들 게 뻔하지 않겠어요.”(취업 준비생 정모 씨·26·여)

‘정년 60세 의무화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트위터와 인터넷 게시판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년 연장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하지만 정년 연장이 청년 취업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모든 세대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긍정적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년 문제가 미래에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당장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 처지에서는 정년 연장이 반갑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회통합위원회와 한국사회학회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년 연장에 대해 50대는 40.5%가 찬성했지만 20대는 24.9%만 찬성했다.

재계도 “정년 연장이 청년층의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에서 20년을 일한 직원의 평균 임금은 신입직원의 2∼3배에 달한다”며 “정년이 연장된 고령근로자의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신규 직원 채용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장은 “분기별로 실적을 발표해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신입사원 채용 인원을 늘리라고 독려해도 그대로 따르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비용 부담이 적은 인턴사원을 쓰는 기업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지 아닐지는 업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기업별로 필요로 하는 인력 분포가 다르고, 사업 성격이 노동집약적이냐 장치산업이냐에 따라서도 정년 연장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더욱이 청년 실업률은 고령층의 정년 연장보다는 경제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0년대 중반 일부 회원국의 경우 고령자의 노동시장 장기체류가 높은 청년 실업률의 주요 원인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1994년 ‘고령층의 조기퇴직을 유인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이 담긴 일자리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 후 10여 년간 청년층 실업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프랑스 등 일부 회원 국가에서는 오히려 고령자 조기퇴직이 사회재정 부담만 늘리고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OECD가 2005년 새로운 일자리 전략을 세우며 조기퇴직 권고안을 폐기한 이유다. 고령자 고용과 청년층 고용은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대체관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청년 실업의 문제는 각 나라와 세계 경제 상황, 그리고 정보기술(IT) 시대에 벌어지는 고용 없는 성장 등의 문제이지 정년 연장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국내 기업들 중에는 신규채용을 줄인 기업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다. 지난해 7월 정년을 만 60세까지로 2년 연장한 현대중공업 측 관계자는 “생산직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한 것이 신규 채용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년 연장이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우수한 인력을 붙잡는 효과도 있었고, 노조가 임금인상률을 양보해 회사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청년 구직자들에게 돌아가는 기회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장치산업 분야에서는 별 영향이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2011년 노사 합의로 정년을 60세로 2년 연장한 GS칼텍스 측 관계자는 “정년 연장 이후 신규 채용 증가는 소폭에 그쳤다. 하지만 이는 정년 연장과는 무관했다. 채용은 투자 계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고 말했다.

비제조업과 공공부문 등 청년층이 선호하는 ‘괜찮은 일자리’에서는 정년 연장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2006∼2011년 정년을 연장한 94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년 연장 전후의 신규채용을 분석한 결과 비제조업은 29.1%, 공공기관은 4.0% 각각 줄어든 반면 제조업은 29.5%가 늘어났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부문 등 사무직 분야는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며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제도를 손봐야 세대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정년 연장이 청년 세대에게도 유리한 일이 될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0∼40년 뒤에는 젊은이들도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긴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길진균·이성호·김창덕 기자 leon@donga.com
#정년연장#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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