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고등학교의 고3 중간고사에서 출제된 서술형문제다. 학생들은 (가), (나), (다)의 답을 각각 구한 뒤 그중 가장 많은 수의 볼펜을 얻을 수 있는 경우 한 가지를 선택해 그 식과 답을 쓰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 중 ‘(가, 나, 다 중 택1)’로 표현된 부분에 대해 일부 학생들이 오해를 한 것. 이들은 (가), (나), (다) 3개 중 하나를 골라 그 식과 답을 쓰면 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
시험을 마치자 반마다 학생 5∼6명이 담당교사를 찾아가 이의를 제기했다. (가), (나), (다) 중 하나만 선택해 식과 답을 쓴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은 “조건에 ‘(가, 나, 다 중 택1)’이라고 애매하게 쓰여 있어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며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정확하려면 ‘(가), (나), (다)의 경우 볼펜을 최대 몇 개까지 구입할 수 있는지를 각각 구한 뒤’와 같이 조건이 명확히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학교의 고3 A 양은 “6점짜리 서술형 문제였다. 6점이면 내신등급이 오르내릴 수 있는 점수인데, 문제를 오해하는 바람에 0점을 받았다. 부분 점수라도 줘야 한다”면서 “학생들도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 학교 시험기간을 맞은 중·고등학교에는 서술형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주요 시도교육청이 학교시험에서 서술형문제를 최대 40% 이상 출제하도록 하고 있지만 서술형문제의 특성상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학생과 대입 수시모집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은 1, 2점 차이로도 내신등급이 달라질 수 있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게다가 길거나 여러 개의 문장으로 문제를 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일부 교사는 출제 의도를 제대로 문장으로 옮기지 못해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많은 교사들은 서술형문제를 출제하면서 골머리를 앓는다. 일부 교사 사이에서는 ‘교육당국의 지침에 따라 서술형문제의 형식은 갖추되, 정답은 서술형으로 나오지 않도록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열린 답’을 요구할 경우 채점 기준을 두고 학생과 학부모의 의혹 제기가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서술형문제 출제비율을 맞춰야 하는 교사들은 이런 현실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서술형문제를 출제하고 있을까.
① ‘조건 달기’형
국어, 영어 서술형문제는 2중∼3중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영어과목은 해외 경험이 많은 학생들이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고급 어휘를 활용하거나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구어(口語)를 담아 답을 써냄으로써 채점 교사들을 당혹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쫀쫀한’ 조건을 단 문제를 내는 것. 알파벳 첫 글자를 제시하거나, 단어들을 모두 제시한 뒤 이들을 순서대로 배열해 완전한 문장으로 만들어 쓰는 형태의 문제가 출제된다. 국어도 마찬가지. ② ‘사전 동의’형
시험 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가르쳐준 내용과 표현을 써야만 정답”이라고 미리 못 박는다. 서술형이지만 답은 오직 하나만 인정하겠다는 뜻.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답을 오직 하나만 인정할 거라면 서술형이 아니라 차라리 단답형 주관식으로 문제를 출제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③ ‘눈 가리고 아웅’형
이 문제는 ‘∼다’로 끝나도록 답을 쓰게 되어있다. 만약 정답이 명사형으로 나오면 이 문제는 단답형 주관식으로 간주되기 때문. 정답을 ‘∼다’와 같이 문장형으로 써야만 서술형문제로 간주된다. 그래서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순신’이라고 답을 쓰면 단답형, ‘이순신이다’라고 답을 쓰면 서술형”이라는 자조 섞인 소리도 나온다.
④ ‘나 몰라라’형
지필고사의 시험지에는 분명 ‘서술형문제’라고 쓰여 있지만, 정작 서술형이 아닌 단답형 답을 원하는 문제를 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서술형평가 문제의 실제 출제 비율은 어떻게 확보할까? 모두 수행평가로 대신하는 것. 특히 과학, 사회과목에서 이런 경우가 적잖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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