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평화대, 외교면책 특권도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9일 03시 00분


■ 아태센터 줄줄이 드러나는 의혹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사진)이 A 교수를 처음 만난 건 2009년경이었다. 스위스 대사관저에서 열린 만찬장. 영어를 잘하고 매너가 좋은 데다 국제관계를 잘 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 모르지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국제회의에서 두어 번 만났다.

국무총리실장직에서 2010년 8월 물러난 뒤에 A 교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좋은 목적으로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를 만드니 유피스 AP재단 이사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한국이 유피스 국제협정에 가입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별도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월급도 없으니 그냥 명예이사장으로 이름만 걸어 달라고 부탁했다.

○ 곧바로 그만뒀지만 행정처리 안 해

권 전 실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2011년 3월 아태센터 입학식에서 축사도 했다. 당시 학생은 10명이 안 됐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A 교수는 “초기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아태센터의 학교 운영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권 전 실장은 아태센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총리실을 통해 외교부와 교육부에서 답변이 왔다. “허가를 안 받은 학교인데 정체가 불분명하다. 이사장을 관두는 게 낫다.”

당시 아태센터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 건물 안에 있었다. 권 전 실장은 이곳에 재직하던 친구에게도 문의했다. 비슷한 내용을 들었다. “좀 이상한 것 같으니 이사장직을 안 하는 게 좋겠다.” 그는 사임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그해 5월 3일 만났다. 이사장직을 그만두겠다며 인감증명서를 건네주고 도장을 찍었다. 이후 권 전 실장은 A 교수를 만난 적이 없다. 이사장직 사임 절차가 행정적으로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런데 아니었다. 2년여가 지난 8일, 권 전 실장은 아태센터의 불법 운영 사태를 보도한 동아일보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2012년 5월까지 이사장으로 돼 있었음을 알았다. A 교수가 사임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권 전 실장은 “A 교수로부터 이용당하고 직함을 도용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인 전 AP재단 이사는 “대부분의 이사장이 매우 짧게 재임했고 계속 바뀌었다. 이사로 등재된 사람이 형식적으로 이사장직을 대행한 적도 있었다. 이사회는 1년에 서너 차례 열렸고 매번 모이는 이사 수도 들쭉날쭉했다”고 말했다.

○ 센터 측, 국제기구로 인정 요구

A 교수는 AP재단과 아태센터의 추진 및 설립 과정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태센터를 국제기구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A 교수 측이 아태센터를 국제기구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국제기구의 직원은 면책특권을 인정받는 외교관 신분이 된다.

외교부는 아태센터에 “이건 교육기관이고 학생들이 학위를 받는 문제다. 외국대학도 국내에 분교를 세울 때 필요한 법령이 있으니 그에 따라서 하면 좋겠다”고 안내했다. 한국 정부가 유피스 국제협정에 가입해 평화교육을 지지할 순 있지만 아태센터 운영에 관한 문제는 교육당국이 정한 법적인 요건을 지켜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초 비공식적으로 학교 설립에 관한 문의가 와서 일반적인 사항을 설명했다. 국제조약에 따른 설립 근거가 있으면 외교부에서 확인을 받아 오라고 했지만 그 이후 더는 문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대학원대도 아태센터 문제로 골치를 썩였다. 이 대학 관계자는 “유엔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연구협조 차원에서 2011년경 무료로 사무실을 내줬다”고 말했다. 북한과 통일, 유엔은 연구를 연계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막상 사무실을 빌려주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학생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학교의 정체가 불분명했다. 이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부에 문의한 결과 아태센터가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곳임을 알게 됐다. 공동연구를 할 만한 여건도 안 됐다.

마침 대학 강의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지난해 초부터 사무실을 비우라는 공문을 보냈다. 아태센터는 순순히 응하지 않다가 3월에야 나갔다. 북한대학원대 관계자는 “한 번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니 계속 나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 고생했다”고 말했다.

본보는 A 교수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이샘물·김도형·이철호 기자 evey@donga.com
#유엔평화대#아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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