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요트를 탈 수 있는 ‘서울마리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봤고, 주변을 지나며 수십 척의 요트가 그림처럼 떠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사치스러운 레저라는 선입견 탓인지 직접 타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최근 서울마리나에서 1만5000원이면 1시간 동안 요트를 승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동절이었던 1일 오후 6시 반 20, 30대 세 커플과 함께 8인승 배에 올랐다. 요트에 오르자 선장 한재현 씨는 “오후 6시 반은 한강 너머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황금시간대”라며 “특히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어쩐지 탑승자가 기자와 선장을 빼곤 모두 연인이더라니.
그저 작은 요트로 1시간 동안 한강을 구경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5분 정도 엔진을 이용해 강 중앙으로 나온 뒤 선장은 엔진을 껐다.
“이제부터는 바람만으로 배를 움직일 겁니다. 요트의 매력은 엔진의 소음이나 진동 없이 고요하게 바람만으로 간다는 점이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요트를 즐겨보세요.”
선장이 선수로 가 삼각형 모양의 돛(지브세일·jib sail)을 펼쳤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탑승자 중 진형래 씨(30)가 지난해 요트 강습을 받은 경험이 있어 키를 조정하는 임시 스키퍼(skipper)를 맡기로 했다. 선장은 좌우현의 윈치(돛을 조정하는 줄이 감겨 있는 곳)를 담당하는 윈치맨을 맡았다.
선장이 배 한가운데의 가장 큰 돛인 메인세일(main sail)을 펼치자 배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돛의 좌우를 바꿔 배의 방향을 바꾸는 태킹(tacking) 기술을 펼치자 배가 한쪽으로 쏠리며 스릴 넘치는 상황도 연출됐다. 바람에만 의존해 움직이는 배이지만 상당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선장은 “오늘은 사흘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제대로 바람이 불고 있다”며 “바람이 아예 불지 않는 날도 있다”고 설명했다.
요트의 구조와 이동 원리도 배울 수 있다. 선장은 “요트는 관광이 아니라 체험”이라며 “몇 번 타다 보면 요트를 직접 조종해볼 수도 있다. 요즘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배 2척을 빌려 경기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요트 면허를 가진 사람 1명만 있으면 누구든 요트를 조정할 수 있다.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바람의 방향에 맞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요트를 느끼다 보니 주변 풍경에 신경 쓸 여가가 없었다. 이때 한 여성이 “석양이 정말 낭만적”이라며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당산철교를 배경으로 노을 진 한강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1시간가량 요트 체험을 마친 뒤 배에서 내렸다. 동승했던 이들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여성에겐 낭만적인 체험이었고 남성들에겐 호기심과 도전을 자극하는 스포츠로 느껴진 듯했다. 김현정 씨(29·여)는 “1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한강의 풍경이 아름다워 좋았다”고 말했다. 황문준 씨(30)는 “다시 와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기자가 느낀 요트의 매력은 ‘아날로그’적 감성에 있었다. 엔진을 이용해 달리는 모터보트가 배터리로 작동되는 ‘전자식 시계’라면 요트는 마치 손으로 태엽을 감아줘야 초침이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 같은 느낌이랄까.
요트 승선은 서울마리나 홈페이지(www.seoul-marina.com)를 통해 최소 3일 전 예약을 해야 한다. 운항은 오후 3시, 5시, 6시 반, 8시 4차례 이뤄진다. 비가 오는 날은 운행하지 않으며 6세 이하의 아동은 탑승할 수 없다. 28인승 대형 요트는 시간당 33만6000원에 대여할 수 있으며 식사 서비스 주문도 가능하다. 함께 있는 세일링아카데미에선 주말을 이용해 시간당 3만∼5만 원에 딩기(보조엔진과 선실이 없는 2인승 소형 요트)와 크루저(보조엔진과 선실이 있는 요트) 강습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마리나 외에 난지한강공원 내의 ‘700요트클럽’에서도 요트 체험 및 교육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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