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 씨(53)는 장마철이 다가올수록 불안해진다. 이 씨의 아파트는 봉산 바로 아래에 있다. 장마철에 폭우가 내리면 산에 있던 흙 바위 물이 섞인 ‘토석류’가 쏟아질 수 있는 산사태 취약 지역이다. 최악의 경우 2011년 7월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처럼 인명 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시는 우면산 산사태 이후 산사태 예방을 위해 지난해부터 사방댐 보막이 등 사방(砂防)시설을 설치하는 산사태 예방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초 서울시와 은평구가 이달 말까지 이 씨가 사는 아파트 일대에 사방시설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이 씨는 “지금까지 공사를 진행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며 “이대로 장마철을 맞았다가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시내 25개 자치구와 함께 장마철 전인 이달 말까지 시내 산사태 취약지역 275곳에 사방시설을 설치키로 했다. 이 공사에 국비와 시비를 합쳐 289억100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그러나 본보 확인 결과 10일 현재 공사가 완료된 곳은 전체 공사 예정지역의 5%인 14곳에 불과했다. 아예 공사 발주가 되지 않은 곳도 36곳에 달한다.
13일 본보가 입수한 서울시의 ‘2013년 산사태 예방 사방사업 추진 현황’ 자료를 보면 공사 예정 275곳 중 이달 말까지 사방시설 준공이 예정된 지역은 53곳(완료 14곳 포함)에 불과하다. 시는 올해 초 공사 완료 시점을 이달 말까지로 정했다가 다음 달 15일로 이미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하지만 275곳 중 113곳의 준공 예정 시기는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장마가 시작되는 다음 달 15일 이후로 되어 있다. 113곳 중 64곳은 장마가 끝나는 시점인 7, 8월에 준공된다. 이마저도 계획에 불과해 실제 해당 시기에 끝날지도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시설을 설치한 뒤 지반이 다져지는 안정화 기간을 가지려면 최소한 장마철 한두 달 전에는 관련 공사가 끝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 측은 “사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장소 중 상당수가 사유지 내에 있어 사유지 주인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275곳 중 사유지에 포함된 지역은 10곳 안팎에 불과하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방사업법에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사방시설은 사유지 여부에 관계없이 설치할 수 있게끔 명시돼 있다”며 “지난해 말부터 추진했는데도 준공이 계속 늦어지는 것은 결국 사방시설 설치 사업을 총괄하는 시의 추진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주변에선 준공이 늦어지는 것이 대부분 시와 자치구와의 협의가 늦어지거나 업체 선정이 늦어지는 등 절차상 이유라고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사방시설 설치 목표인 215개를 연말에 가서야 모두 준공했는데 올해는 많이 나아진 것”이라며 “장마철 전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업체와 자치구를 최대한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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