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문화관 앞에서 장터를 열고 있는 학생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추로스 2000원’ ‘김치삼겹살 3000원’ 등 가격표가 달린 천막 아래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장터를 주최한 학생들은 지나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데 열을 올렸다. 지나가던 대학원생 강모 씨(30)는 “예전에는 어려운 이들과 연대한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저 술 먹고 자기들 쓸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5, 6년 전만 해도 서울대 교내에서 열리는 장터에서는 전국철거민연합이나 학습지 노조 등과 함께 기금을 마련한다는 내용의 홍보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본보 취재팀이 찾은 장터 6곳 중 “수익금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겠다”고 밝힌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장터를 주최한 학생 자치회 측에서 사용하거나 수익금 운용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1학년 정모 씨(19·여)는 “일단 원금부터 찾고요”라고 대답했다. 2학년 백모 씨(20)는 “지난해에는 100만 원가량 수익이 났다”며 “대부분 자체 활동비로 쓰고 많이 남은 경우에는 수련회를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문화관 앞 장터는 하루 2개까지 허용되며 희망 학생 자치단체가 학교 측에 신고만 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학생장터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쓰레기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교수님 연구실과 대학원 연구실이 몰려 있는 건물 옆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근처 화장실에 구토를 해 놓고 제대로 치우지도 않는 데다 장터가 끝난 뒤에는 여기저기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다”고 지적했다.
8일에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장터가 왜 생긴 건지 알기나 하나’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글은 “예전에는 뜻이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해도 어려움이 있어서 학생들이 일조하기 위해 장터를 시작했다”며 “너희가 돈 벌라고 그렇게 비싸게 팔도록 (허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친목 활동에 쓰는 돈 벌겠다고 폭리를 취하면서 민폐 끼치는 것을 언제까지 학교에서 가만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비판적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실제로 장터를 하루 운영하고 나면 최소 70만∼80만 원의 수익이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장터를 하겠다고 오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취지가 불분명하다”며 “술값을 벌기 위해 학교 안에서 굳이 술을 팔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러한 시각차가 ‘세대 차’라며 장터의 순기능도 있다고 반박했다. 라모 씨(20·여)는 “장터를 통해 반이나 과 동기들이 다같이 모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균 서울대 인문대 학생부학장은 “시대가 변한 만큼 과거 장터가 지녔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수익금 중 일부를 더 어려운 학생이나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방법을 학생들 스스로 고민해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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