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공사비 못준다” “과태료 대납”… 대형건설사 ‘甲의 횡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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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현장 하도급업체의 눈물

대형 건설업체가 하청업체에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공사 관련 과태료까지 대납시키는 등 건설업계에서 ‘갑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중견그룹 계열 건설사인 B사는 지난해 부산에서 아파트 신축 공사를 하면서 지반에 철골 구조물을 세우는 공사를 하청 받아 진행한 N사에 계약서대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N사는 약속했던 돈을 협력업체에 지급하지 못해 회사 자산이 가압류되고 빚더미에 앉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N사는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B사를 제소했지만 합의가 안 돼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행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 피치 못해 늘어난 공사비도 못 준다는 ‘갑’

지난해 7월 계약 당시 B사는 예상 공사대금을 32억800만 원으로 책정하되 추후 물량정산을 하겠다고 명시했다. 물량정산은 계약 시점에 정확한 공사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우므로 공사가 끝난 뒤 투입된 자재와 장비 등의 값어치를 따져 추산하는 방식이다. N사는 지난해 10월 공사를 마친 뒤 물량정산을 해 소요비용을 36억9000만 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B사는 “변경된 공법 등 현장 상황을 반영해 공사 비용을 산정했기 때문에 계약 금액을 초과하는 부분은 지급할 수 없다”며 현재 N사에 30억 원만 지급한 상태다.

N사는 공사 도중 지반에 두꺼운 암석층이 발견돼 공법을 바꾸면서 하루 공사 시간을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였다. 공사 소음으로 민원이 제기되자 관할 구청과 협의해 취한 조치였다. 이 때문에 공사기한이 길어져 장비 대여료와 인건비가 당초 계획보다 상승했다. N사는 이 비용까지 포함하면 공사비가 60억 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지만 B사는 “원청업체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다”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계약할 때 “현장 여건에 의해 발생되는 비용은 별도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미리 공지했다는 것이다. 이 조항대로라면 공사 도중 발생하는 돌발 변수는 모두 하청업체가 떠안아야 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종광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소음으로 민원이 제기돼 과태료가 부과되자 B사는 N사에 대신 납부하도록 한 사실도 공정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과태료나 과징금은 원청업체가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하청업체에 대납을 시킨 것이다. N사는 5차례에 걸쳐 790만 원의 과태료를 냈다.

실제 지출한 공사비를 B사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N사는 7억 원을 대출받아 협력업체에 일단 지급했지만 5억 원은 아직 못 주고 있다. 매달 은행에 대출이자로 내는 500여만 원은 직원 30여 명에 월 매출 10억 원 규모인 N사로선 큰 부담이다. N사 관계자는 “장비와 인력을 대준 협력업체에 몇 달째 돈을 못 줘 회사로 가압류가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가 돈을 못 주면 굴착기 한 대로 먹고사는 장비업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줄줄이 쓰러진다”고 말했다.

N사의 제소로 이 사안을 조사한 건설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형 건설사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태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전쟁으로 공사 못해도 을 책임

재벌그룹 계열 건설사가 대부분인 원청업체들이 갑의 지위를 이용해 중소 하청업체에 횡포를 부리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청업체 선정 과정에서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가 있음에도 공사 금액을 가장 낮게 제시한 2, 3개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다시 경쟁을 붙이는 재입찰 관행이 대표적이다. 가격을 더 낮추기 위해서다.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의 한 건설사는 2009년 인천 청라지구 구조물 공사 관련 하청업체를 선정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1억5900여만 원의 낙찰가를 낮춘 사실이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3억4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고충처리부 강성주 과장은 “원청업체들이 3, 4회 재입찰을 하며 당초 예상 금액의 60∼70% 수준으로 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불공정 관행을 막기 위해 공정위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쓰도록 권장하지만 원청업체들은 편법을 동원해 이를 피해가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표준계약서를 쓰면서 20∼30개의 ‘특약’ 조항을 붙이는 방식으로 하청업체에 불리한 내용을 담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설계변경은 하지 않는다’거나 주간의 2배인 야간 인건비는 하청업체가 부담한다는 내용들이 특약에 포함된다. 국내 도급 순위 3위권의 한 대형 건설사는 ‘전쟁이 나도 공사를 못하면 하도급사의 책임이다’라는 내용의 특약을 내걸기도 했다. 강 과장은 “하청업체로선 원청건설사의 말을 안 듣는 업체로 소문나면 아예 공사를 따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한 특약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광영·김준일·김성모 기자 neo@donga.com
#건설업계#공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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