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엽 씨(왼쪽)와 어머니 정동애 씨가 서울대 교정에서 오후의 봄볕을 즐기고 있다. 유 씨와 정 씨는 나들이 내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소년은 언젠가부터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혼자 일어서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불편한 신체가 소년의 꿈을 3평짜리 쪽방에 가둬놓진 못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벽면의 세계지도를 향했다. 몸은 굳어갔지만 마음은 드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그 소년이 올해 3월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당당히 합격했다. 경남 거제도 작은 어촌마을 출신 유동엽 씨(19·지체장애 1급) 이야기다. 거제도 전체를 통틀어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은 3명. 그의 모교인 거제중앙고에서는 그가 유일하다.
이웃과 친구들은 그의 입학을 ‘기적’이라고 한다. 유 씨가 앓는 병 때문이다. 뒤셴형 근이영양증. 근육에서 단백질이 부족해지면서 시작된다. 팔다리 근육을 차츰 못 쓰다 결국 몸 전체가 마비된다. 물리치료로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 완치법이 없는 난치병이다.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은 건 5세 때인 1999년. 유치원 학예회 무용 연습 도중 다리에 경련이 생기면서 쓰러졌다. 어머니 정동애 씨(44)는 “아이가 진단을 받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웠다. 스트레스 때문에 1년 넘게 구안괘사(입이 돌아가는 병)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유 씨의 몸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휠체어에 의지했다. 지금은 하반신은 물론이고 상반신도 거의 마비돼 양 손가락과 고개만 끄덕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뜨거운 학구열로 신체장애를 극복했다. 중고교 재학 시절 내내 최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그가 특히 좋아한 과목은 ‘지리’.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수도, 인종, 지형 특성, 문화 특성까지 꿰고 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여행가 한비야 씨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다.
유 씨는 대학에서 도시계획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정 씨는 안타까웠다. 가족의 수입원이라곤 아버지 유형근 씨(50)가 낚싯배를 운항하며 벌어오는 월 80만∼200만 원이 전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 씨는 장애와 가난이 아들의 꿈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행운이라 해야 할까. 사연이 지역 신문에 소개되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덕분에 병원 치료비와 대학 등록금 걱정을 덜게 됐다.
이제 유동엽 씨는 도시계획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 그는 장애인이 일반인처럼 편리하게 생활하는 도시를 설계하고 싶다. 내년에 세부 전공을 정할 때는 지리학과를 택할 계획이다.
유 씨에게 대학생활은 만족스럽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대학생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동아리 활동을 못하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 씨는 “늘 전동휠체어를 타고 엄마랑 함께 다니는 우리 아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동엽이에게 ‘먼저 용기를 내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라’고 잔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유 씨에게 최근 다른 후원자가 생겼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재활에 필요한 기구를 3월부터 지원한다. 재단은 ‘희귀난치성질환자의 날(5월 23일)’을 앞두고 지체장애인 학습보조기기를 14일 유 씨에게 건넸다. 유 씨는 “앉아서 책 읽기도 힘들었는데 이런 기기 덕분에 공부하기가 수월해졌다. 도움을 받은 만큼 노력해 사회에 꼭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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