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아들을 키우는 김모 씨(27·여)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맡겨놓은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줄 선물 걱정이 컸다. 동네 ‘직장맘 모임’에 나갈 때면 다른 엄마들과 15일 스승의 날 선물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는 원생 모두가 먹을 수 있는 분량의 피자를 돌렸다. 올해는 어쩌나 걱정하던 김 씨는 지난달 말 유치원에서 보낸 통신문을 보고 한시름 놓았다. 통신문에는 ‘5월 15일은 휴원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5월은 가정의 달. 하지만 주부들에겐 ‘눈물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과 같은 행사가 많은 데다 결혼식 등 챙겨야 할 대소사도 넘쳐난다. 등골이 휘청거릴 정도로 가계지출이 최고조에 이르는 이달을 가리켜 주부들은 ‘등골 브레이커(breaker)의 달’이라고 말한다. 5월 중에서도 ‘스승의 날’이 되면 주부들의 고민은 특히 깊어진다. 다른 기념일에는 지출을 줄여도 아이 교육과 관련된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려는 부모 마음 때문이다.
이런 스승의 날 문화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스승의 날 본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하는 학교가 늘고 있는 것.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추계초교는 개학과 동시에 가정통신문을 각 가정에 보내 “방문을 원하시면 마음만 가지고 오십시오. 음료수 한 병이라도 가지고 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공지했다. 스승의 날은 물론이고 다른 날도 예외가 없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초교는 학교 현관 출입문을 전부 지문인식 잠금장치로 바꿨다. 학부모라 하더라도 건물 안에 들어가려면 학교보안관으로부터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학부모들이 수시로 출입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촌지 주고받기’ 등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매년 스승의 날 즈음에 열렸던 학부모 바자회도 오해를 없애기 위해 5월 말로 미뤘다. 이 학교 관계자는 “시설 도입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상담과 통신문을 통해 ‘선물을 받지 않는 문화’를 학부모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선물 안 받기 운동’도 시작 초기에는 진정성이 학부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관행대로 선물을 준비해 오는 학부모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3년째 취지를 알리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학교에 세 자녀를 보낸 차재은 씨는 “아이들이 카드를 쓰고, 카네이션을 만드는 것으로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현한다”며 “학교가 선물과 촌지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에 학부모들이 크게 감사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사설 교육기관인 어린이집으로도 점차 스며들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은 아예 스승의 날을 휴일로 정한다. “스승의 날 기념 선물 및 식사 대접은 일절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통신문을 보내기도 한다.
‘설마’ 하는 마음에 선물을 준비해 간 학부모들은 교사들이 선물을 끝까지 거부하는 모습에 민망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두고 있는 임모 씨(38·여)는 “담임선생님 선물로 수입 화장품을 준비했는데 끝까지 거절하더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촌지 근절 문화가 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지만 적지 않은 학부모가 “정말 안 줘도 되는 걸까”라며 불안해하는 게 현실이다. 이번 스승의 날을 앞두고도 경기 남양주시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사가 반장을 불러 “작년에는 화장품을 받았는데 올해는 뭘 해줄 거냐”고 압력을 넣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선물을 거절한다고 강조해도 상당수 학부모들은 ‘그럼 부담 없는 선물이라도 찾아봐야겠다’며 선물 고르기에 고심한다. 인터넷카페 ‘맘스홀릭베이비’에는 좋은 선물을 추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주로 앞치마, 덧신, 핸드크림 등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그 대상이다. 솜씨가 좋은 주부들은 쿠키를 굽거나 재봉틀로 화려한 카네이션 다발을 만들어 ‘돈보다 정성’을 앞세우며 거절하기 힘든 선물을 전달하기도 한다.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부담스러운 선물 전달 관행에서 벗어나도록 학교가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학부모들도 고가의 선물을 준비하기보다는 자신의 은사에게 찾아가거나 편지를 쓰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면서 스승의 날 문화를 바로잡는 데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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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10:31:12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이어 스승의날까지 5월은 푸르구나... ??? 눈치보기형이 제일 많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