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일하며 월급 93만원… 乙보다 못한 미용실 ‘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5일 03시 00분


■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방치… 고용부 이달말까지 근로감독 실시

박모 씨(22·여)의 직장은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의 한 미용실이다. 헤어디자이너(미용사)나 데스크(매장 관리직원)는 아니다. 그녀의 공식직함은 인턴이다. 과거 ‘미용실 시다’(보조인력을 일컫는 일본어)라고 불린 미용보조 인력이다. 요즘 미용실에서는 스태프로 부른다.

박 씨가 스태프로 일한 지는 2년이 됐다. 제법 고참급에 속한다. 하지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근무환경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박 씨는 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한다. 10시간 내내 서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는 어쩔 수 없지만 한가한 시간에도 앉아서 쉴 수가 없다. 직원이 서서 대기하면 ‘잘나가는 매장’, 앉아서 기다리면 ‘망해가는 매장’이라는 업계 인식 탓이다.

박 씨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면 나중에 다리가 퉁퉁 붓는데 고통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라며 “허기가 지면 스태프끼리 눈치껏 과자를 나눠 먹곤 한다”고 말했다.

○ 서러운 을(乙) 미용실 스태프

박 씨 같은 미용실 스태프는 헤어디자이너를 꿈꾼다. 보통 3, 4년간 스태프로 일한 뒤 정식 헤어디자이너가 된다. 일종의 도제식 교육인 셈이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임금과 미용기술까지 배울 수 있으니 겉으로는 이해관계가 맞아 보인다. 그러나 속을 살펴보면 곳곳에서 노동력 착취 정황이 포착된다.

대부분의 미용실 스태프는 박 씨처럼 하루 10시간가량 선 채로 일한다. 그래서 하지정맥류를 호소하는 이가 많다. 하지정맥류는 주로 오래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질환으로 다리에 핏줄이 파랗게 비치고 심하면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다. 정맥 판막이 손상돼 다리의 피가 핏줄에 고여 발생한다.

이른바 ‘진상 손님’한테서 받는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헤어디자이너도 비슷한 처지이나 이런 손님들은 스태프에게 심하게 구는 경우가 많아 감정노동 강도가 더 심하다. 특히 박 씨는 “샴푸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긴장한다. “귀에 물이 들어갔다” “옷이 젖었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손님은 그래도 얌전한 편이다. “너도 한번 젖어 볼래? 네 옷도 한번 적셔줄까?”라며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손님도 있다. 머리를 감길 때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노출될 소지도 많다. 박 씨 역시 남성 고객의 머리를 감기다 음흉한 시선에 고개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기도 하지만 노골적으로 “어깨 좀 주물러 달라”고 말하거나 실수인 양 엉덩이를 손으로 치는 경우도 있다. 박 씨는 “주말에 친구들이 놀러 간다고 할 때나 내 또래들이 와서 비싼 파마를 하는 걸 보면 억울한 마음이 든다”며 “그래도 헤어디자이너가 너무 되고 싶으니까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씨가 이렇게 한 달을 일하고 받는 월급은 100만 원 남짓. 이 정도도 업계에서는 꽤 많이 받는 편이다. 하지만 쉬는 날 하루를 제외하고 전체 근무시간을 감안하면 시간당 임금은 4200원이 채 안 된다. 2013년 최저 임금은 시급 4860원이다. 초과근무, 휴일근무에 따른 수당은 당연히 없다.

이런 상황은 미용업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소규모 동네미용실보다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업체의 근무환경이 더 열악하다. 청년층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198개 미용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태프의 주당 근무시간은 64.9시간에 달했고 평균 임금은 93만 원에 불과했다. 초과·휴일근무를 반영해 시급을 계산하면 2971원에 그쳤다. 노무법인 기린의 이기중 대표노무사는 “그동안 미용업계는 근로기준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방치됐었다”며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대한 지속적인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박준 사건’으로 열악한 근무환경 부각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유명 브랜드 미용실 41곳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대상은 박승철 리안 이철 박준 이가자 미랑컬 준오 등 7개 브랜드였다. 조사 결과 최저 임금을 지키지 않은 미용실이 11곳(26.8%)으로 확인됐다. 전체 평균 임금은 108만 원이었지만 적게는 70만 원을 주는 곳도 있었다. 34곳은 연간 1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아예 실시하지 않았다.

고용부의 조사는 올해 3월 불거진 유명 헤어디자이너 박준 씨(62) 성추문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함에 따라 불기소됐지만 미용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이 불거졌다.

고용부는 이달 말까지 전국 200개 미용실을 대상으로 수시감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김병철 청년유니온 조직팀장은 “고용부 조사는 평균임금이 지나치게 높게 나타나는 등 실제 현장과는 거리가 있다”며 “수시감독 과정에서 보다 정확한 실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호·곽도영 기자 starsky@donga.com

[채널A 영상]‘갑과 을’ 서글픈 현실
#근로기준법#미용실 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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