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절반 찬성에도… 밀양 송전탑 공사 최종담판 결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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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5일 03시 00분


■ 9년째 해결책 못 찾고 제자리걸음

“어느 날 탈핵(脫核)단체 등이 ‘희망버스’를 만들어 마을에 들어왔어요. 가뜩이나 주민들 간의 골도 깊어졌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는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이달 10일 경남 밀양시 교동 밀양시청 정문 앞. 밀양시 청도면에 산다는 김모 씨(51)는 진보신당이 시청 앞에 내건 ‘핵발전 OUT, 송전탑 OUT’라는 현수막을 가리키며 지친 표정을 지었다. 한국전력은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생산할 전기를 경남 창녕군의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송전선로 설치 공사를 2005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다른 지역은 공사가 끝났지만 밀양 지역만 주민 반발에 부닥쳐 공사를 못하고 있다.

같은 날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송전탑 공사 현장. 터파기 공사만 끝난 채 주변은 쇠사슬이 쳐져 있었다. 송전탑이 들어서야 할 자리지만 지난해 9월 이후 공사가 중단됐다. 양윤기 단장면 동화마을 이장은 “철탑을 세우면 땅값이 ‘반값’으로 떨어진다”며 “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地中化)가 아니면 어떤 보상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8년 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측은 13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최종 담판’을 지으려 했지만 생각의 차이만 확인한 채 끝났다.

올해 12월 신고리 원전 3호기 완공을 앞두고 한전은 송전탑 건설에 최소 8개월이 걸려 이달 중 공사 강행이 불가피하다는 방침이어서 주민과의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개연성도 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국무조정실이 선정한 69개의 ‘선제적 갈등과제’ 중 하나다. 박근혜정부의 갈등 관리 리더십을 가늠하는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5 대 5로 갈린 마을…상처 입은 주민들

한전에 따르면 울산 울주군에서 경남 창녕군에 이르는 90.5km 구간에 송전탑 161기를 세워야 한다. 밀양에는 69기를 설치해야 하지만 주민 반대로 52기의 설치가 지연되고 있다. 현재 밀양의 30개 마을 중 절반인 15개 마을이 한전과 합의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2005년부터 불거졌다. 주민들은 자연경관 훼손과 전자파 피해, 땅값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 집회를 잇달아 열었다. 2008년 8월 착공 이후에는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10차례 중지됐다. 주민들끼리 찬반 의견으로 나뉘어 폭행하거나 일부 주민들이 공사 장비를 파손하는 사태도 잇따랐다.

정부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가 한전과 주민, 정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참여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양측의 타협을 시도했다. 당시 주민-한전 간 대화위원회를 운영했지만 협상은 결렬됐고, 지난해 9월부터는 공사가 아예 중단됐다.

올 들어 한전과 주민 간 토론회가 6차례나 열렸지만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달 13일 토론회에서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가 송전탑 건설 이외의 대안을 찾기 위한 전문가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나, 한전은 시한이 촉박하므로 일단 공사를 재개하되 협의체 구성은 공사와 병행해도 되지 않느냐고 맞섰다.

○ 올겨울 전력 수급 ‘빨간불’, 다급해진 한전과 정부

한전과 정부는 다급해졌다. 신고리 원전 3호기는 7월 시험운전을 거쳐 12월 본격 가동된다. 송전선로 건설에 최소 8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이달 중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3조2500억 원을 들여 원전을 지어 놓고도 송전선로가 밀양 지역에서 끊겨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는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4월에도 원전 고장으로 예비전력이 400만 kW대로 떨어져 가슴을 졸였다”며 “신고리 원전 3호기(140만 kW)를 가동하지 못하면 전력 수급이 아슬아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고리 원전 3호기를 포기할 경우 화력발전에 따른 전력 생산 비용은 하루 약 47억 원이다.

정부는 또 신고리 3호기를 제때 가동하지 못하면 원전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신고리 3호기를 참고 모델로 제시했다는 이유다.

한전은 지난달 말 승부수를 띄웠다. 밀양 지역에 매년 24억 원을 지원하고, 특수 보상사업비 165억 원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또 밀양에 태양광발전 단지를 조성해 전기 판매 수익을 재투자하는 등 13개 보상안을 제시했다.

밀양시 상동면 등 일부 주민은 ‘밀양시 5개면 주민대표위원회’를 별도로 꾸리고 한전과의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 박상문 주민대표위 위원장은 “한국과 같은 에너지 빈국에서 원전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마을이 번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반면 반대대책위는 여전히 보상안을 거부하고 ‘지중화’를 고수하고 있다. 반대대책위는 “보상할 돈으로 지중화를 하라”며 “한전이 돈으로 마을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 사태 방조한 지자체, 뒷짐 졌던 한전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지방자치단체나 한전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밀양시는 2010년 중앙토지수용위원회로부터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토지를 열람 공고하도록 의뢰받았지만, 주민 반대를 이유로 1년 9개월간 이를 거부했다. 그만큼 사업이 지연된 셈이다.

한전도 사장이 1년에 한 번 정도 밀양을 찾는 데 그치는 등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송전탑 공사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올해 2월 뒤늦게 특별대책본부를 꾸렸다. 한전 관계자는 “진작 주민 설득에 사운을 걸었더라면 사태가 이 정도로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밀양 지역 보상안에 대한 ‘떼법’ 논란도 고민거리다. 이미 송전탑을 건설한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버티면 더 나오는 게 아니냐. 먼저 합의해 준 사람만 바보 된다”는 항의도 나오고 있다.

밀양=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송전탑#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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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추천 많은 댓글

  • 2013-05-15 08:46:57

    밀양시에 단전해라.밀양시민이 쓰는 전기도 어느지역으로든 송전 탑을 거처서 온다. 아주, 아주 별나고 이기적인 시민의식이다.2년전 나는 대구시에 있는 나의 山에 거대한 송전탑 2개가 들어설때 망설이지 않고 동의해 주었다.

  • 2013-05-15 09:41:35

    방법을 한가지 밖에없다 밀양군의 전기를 단전하라 그방법만이 해결책으로 본다

  • 2013-05-15 08:55:53

    제 2의 도롱룡 사태구만. 이런 황당한 걸 옹호하는 다큐 방송했던 KBS도 황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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