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즉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빗나든 아세아 등촉(燈燭)의 하나인 조선/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비치 되리라.’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는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빗나든 아세아 등촉(燈燭)’이란 시를 통해 조선을 ‘동방의 밝은 빛’으로 묘사했다.
영어로 쓰인 이 시는 당시 주요한 편집국장의 번역으로 지면에 실렸다. 일제 치하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한 줄기 등불이었다.
한국인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타고르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 가면 만날 수 있다. 2년 전인 2011년 5월 18일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인근에 타고르의 흉상이 세워졌다. 타고르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인도의 유명 조각가 고담 팔 씨가 제작한 길이 107cm, 좌대까지 포함하면 210cm 크기의 흉상으로 인도 정부와 국민이 한국에 기증했다.
흉상 제작은 2006년 압둘 칼람 당시 인도 대통령의 방한 때부터 추진되다가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도 국빈방문 때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주한 인도 대사관의 제안으로 건립 준비가 시작됐고 ‘동방의 등불’을 게재한 동아일보사 앞, 광화문 광장 등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최종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동방의 등불’에 대해서는 의미가 과장됐다는 논란도 있다. 지난해 말 출간된 계간 시전문지 ‘시평’ 겨울호(통권 50호)에서 홍은택 대진대 교수(영문학)는 교과서에 실렸던 ‘동방의 등불’ 중 처음 4행만이 타고르가 조선인을 위해 써준 것이며, 뒷부분은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35’에서 갖다 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타고르와 ‘동방의 등불’은 한-인도 양국의 우호의 상징으로 깊게 뿌리내렸다. 신라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과 ‘동방의 등불’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대화 소재다. 흉상 제막식 당시에는 메이라 쿠마르 인도 하원의장이, 그해 7월에는 프라티바 파틸 당시 인도 대통령이 흉상을 찾아 헌화했다. 지난해에는 흉상 앞에서 인도 민속음악을 주제로 한 거리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