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에 팔다리도 자유롭지 않은 듬직이가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고 있다. 전남 여수시 아동복지시설 삼혜원 식구들의 보살핌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듬직이는 최근 두 팔꿈치로 기는 등 몸놀림이 좋아지는 작은 기적을 낳고 있다. 삼혜원 제공
12일 오후 전남 여수시 연등동 아동복지시설인 삼혜원. 산등성이 비탈진 곳에 자리한 삼혜원에 어둠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듬직아, 맘마 먹자.” 거실에 모여 있던 식구들이 안방에 엎드려 있는 듬직이를 불렀다. 듬직이는 양팔을 몸에 붙이고 옆으로 뱅글뱅글 굴렀다. 머리가 방바닥에 부딪히는데도 아프지 않은지 거실 쪽을 향해 계속 몸을 굴렸다. 안방에서 거실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열 걸음 정도 돼 보였다. 힘겨워하는 아이를 누군가가 안아줄 법도 하지만 식구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누가 보면 매정하다고 하겠지만 듬직이 몸이 굳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듬직이는 4년 전 나주의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태어났다. 20대 엄마는 ‘듬직하게 잘 자라라’라는 뜻의 이름만 지어 준 채 친권을 포기하고 떠났다. 팔다리가 굳어가고 말도 하지 못하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듬직이를 10개월 동안 기르던 보호시설은 2011년 8월 삼혜원에 듬직이를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귀여운 외모만 보고는 입양을 고려하던 예비 양부모들이 막상 심각한 장애 상태를 확인하면 입양을 포기해 미혼모 보살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보호시설에선 장기간 듬직이를 돌보기 어려웠던 것. 삼혜원 직원들은 고심했다. 뇌성마비 장애아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윤명숙 삼혜원 원장(55·여)은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아이를 우리가 아니면 누가 받아주겠느냐’는 소명감에 듬직이를 보듬었다. 1963년 설립된 삼혜원에는 서너 살 아이부터 스무 살 대학생까지 62명이 생활하고 있다.
듬직이는 100m² 정도의 방에서 또래 아이 세 명, 중고교에 다니는 누나 네 명과 산다. 또래 아이들은 걷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듬직이와 잘 놀아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듬직이는 누나들이 학교 갔다 돌아올 때가 되면 얼굴이 밝아진다. 혼잣말로 ‘앙, 앙’거리고 윙크를 하려는지 연신 두 눈을 깜박이기도 한다. 세은 양(18·고3)은 “듬직이가 ‘살인미소’를 지으면 모두 뒤로 넘어진다”며 웃었다.
듬직이를 돌보는 박명숙 사회복지사(50·여)는 “듬직이가 처음 왔을 땐 온몸을 웅크리고 고개도 못 가눠 꼭 나무토막 같았다”고 말했다. 안면 근육도 굳어 밥과 반찬을 씹지 못하고 바로 삼키는 바람에 변이 딱딱해져 파내 줘야 했다. 씹는 훈련을 하면서 변비는 없어졌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듬직이의 체계적인 재활훈련이었다.
재활은 삼혜원에서 ‘군기반장’으로 통하는 오승희 간호사(35·여)가 맡았다. 오 간호사는 삼혜원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순천 성가를로병원에 일주일에 세 번 듬직이를 데리고 간다. 이곳에서 듬직이는 관절을 펴고 팔과 등, 목, 다리 근육을 길러주는 신경발달치료를 3년째 받고 있다. 바깥나들이가 잦은 듬직이는 심한 감기를 끼고 살았다. 박 씨와 오 간호사는 밤잠을 설쳐가며 등을 두드려주고 긴 튜브를 코에 넣어 입으로 가래를 빨아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듬직이에게 작은 기적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1월. 재활치료를 받은 지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하자 삼혜원 식구들도 한바탕 뒤집어졌다. 그해 11월부터는 팔꿈치로 기기 시작하더니 막대사탕을 손에 쥐여주면 스스로 빨아 먹고, 누워서 책장의 책을 끄집어낼 정도로 몸놀림이 좋아졌다. 지난달에는 발음이 부정확하긴 했지만 ‘엄∼마’라고 말을 해 식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박 씨는 엊그제 찍은 것이라며 듬직이가 욕조에 앉아 한 팔로 버티면서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는데, 같이 사는 식구들 모두가 사랑으로 보살피니 이렇게 잘 크고 건강해졌어요. 이제 듬직이가 정말 듬직하게 벌떡 일어서는 기적 같은 날을 기다려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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