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 중인 고3 인문계열 학생 이모 군(18·서울 강남구). 요즘 낮에는 국어, 영어B형을 밤에는 국어 영어A형을 공부한다. 왜 ‘이중생활’을 하는 것일까. 2014학년도 수능부터는 국어 수학 영,어는 A, B형 중 한 가지 유형을 선택해 시험을 치르는데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반 42명 중 20등 내외의 성적인 이 군은 서울 소재 대학진학 또는 수도권 대학의 인기 학과 진학을 목표로 국어 영어 수학 모두 A형을 공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학교의 인문계열 정규수업은 국어 영어 모두 B형에 맞춰 진행돼 A형을 대비할 수가 없었던 것. 방과후 수업으로 A형 수업이 개설되기는 했지만 정규수업에 비해 공부의 절대량이 부족했다. 결국 그는 최근 A형 맞춤형 수업을 해주는 국어, 영어 단과학원에 등록했다. 수강료는 과목당 한 달에 15만 원.
이 군은 “수업시간에 교육방송(EBS) B형 문제집을 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A형 문제집 외에 B형 문제집도 모두 사야 한다”면서 “학교에서는 중하위권 학생이 B형을 선택하려고 하면 만류하지만 정작 수업은 B형을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전했다. 》
최근 2014학년도 선택형 수능에서 A형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학습 및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고3 수험생 A 양이 학교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육방송(EBS) B형 문제집과 자신이 실제로 공부하는 A형 문제집을 함께 쌓아 놓고 공부하는 모습.
최근 선택형 수능에서 A형을 준비하는 적잖은 중하위권과 예체능 준비 수험생의 학습 및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되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선택형 수능은 중하위권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정작 학교 수업은 B형을 선택하는 상위권 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많은 고교 교사는 “서울의 주요 대학 대부분이 인문계열은 국어B 수학A 영어B를, 자연계열은 국어A 수학B 영어B를 요구한다. 진학실적이 중요한 고등학교 입장에서는 B형을 중심으로 수업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EBS 문제집 구입비용 2배
A형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학생은 문제집 구입비용이 선택형 수능 도입 전보다 늘고 있다. 선택형 수능이 도입된 뒤로 국어 수학 영어 EBS 교재가 A형과 B형으로 나뉘어 발행되는데, 많은 학교가 EBS B형 문제집을 수업 교재로 활용하며 학교 시험에 반영하기 때문에 A, B형 문제집을 모두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것.
서울의 고3 류모 양은 “A형을 준비하는 성적 중위권 학생들은 정규수업시간에는 B형을 공부하지만 방과후 수업은 A형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4학년도 수능과 연계되는 EBS 교재는 국어는 A형과 B형 교재가 각 5권, 영어는 각 6권이다. 이 교재를 모두 구입할 경우 총 22권인데 이는 지난해 국어 영어 연계교재 총 개수인 12권보다 2배가량 늘어난 것.
인천지역 고3 김모 양은 “A형을 준비하는 학생은 부교재로 쓰는 B형 EBS 문제집과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A형 문제집, 그리고 일반 출판사에서 A, B형 대비용으로 나온 문제집까지 모두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A형 수업 듣기 위해 학원으로
A형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거나 과외를 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학생 대부분이 B형을 선택하는 영어과목에서 두드러진다. 실제로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영어 B형을 선택한 학생의 비율은 82.5%에 달한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정규수업시간에 영어A형 수업을 개설하는 않는 학교가 대부분. 영어A형을 공부하는 중하위권 학생과 예체능계열 학생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잖다. 인문계열에서 국어A형을 준비하거나 자연계열에서 수학A형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서울의 고3 이모 군은 “정규수업은 인문·자연계열 모두 B형으로만 수업한다”면서 “지난달부터 A형 수업을 하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A형 학생까지도 B형 모의고사를 보게 하는 학교도 생겼다. 교사들도 선택형 수능을 지도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A, B형 중 어떤 유형을 선택하는 것이 대입에 유리한지 예측할 수 없어 일단 두 유형을 모두 준비하도록 하는 것. 하지만 A형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선 불필요한 시험을 한 번 더 봐야 하는 셈이다.
실제로 부산의 한 고등학교는 3학년을 대상으로 3, 4월 모의고사를 모두 B형으로 보게 한 뒤 이튿날 영어A형 시험을 다시 치르게 했다. 이 학교의 고3 이모 양은 “6월 모의평가도 영어는 A, B형 모의고사를 이틀에 걸쳐 모두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A형 수업은 수업분위기 나빠져
A형 학생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 학교에선 수업분위기가 예전보다 나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의 고등학교 국어교사 이모 씨는 “자연계열 상위권 학생에게 국어A형 수업을 할 때 고전원문도 고어가 아닌 현대어로 풀어서 출제되니 문제가 쉬워서 예전보다 수업을 더 안 듣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A형을 둘러싼 문제는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마치고 B형에서 A형으로 전환하는 학생이 늘어나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기지역 고등학교 3학년 부장교사인 한 교사는 “B형을 공부한 학생이 갑자기 A형으로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A형과 B형은 문제의 난도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 유형 자체가 달라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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