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을 만든다고 하니 판매책이 샤넬 가방 모조품을 하나 보내줬습니다. 가짜를 분해해 더 진짜 같은 가방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사실 진품을 본 적이 없어 제가 만든 가방이 얼마나 진짜 같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모조품 제조업자 김모 씨(51)는 약 1년 6개월 동안 짝퉁 중에서도 값비싼 샤넬 가방의 짝퉁만 만들었다. 봉제공장 밀집지역인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82.5m² 크기의 공장을 차리고 직원 2명과 하루 10∼15개를 만들던 그는 9일 특허청 상표권 특별사법경찰대에 검거됐다.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진품을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가방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외관만으로는 진품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평가했다. 특허청 측은 그의 제품을 상품(上品)을 뜻하는 ‘A급’으로 추정했다.
15세 때부터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팔리는 가방을 만든 김 씨에게 짝퉁 가방 제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조 가방을 분해한 다음에 비닐로 똑같이 한번 만들어봤어요. 단번에 맵시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진짜 원자재를 갖고 생산했어요.”
그가 만드는 짝퉁 샤넬 가방 중 대표 제품인 ‘2.55 클래식미디엄’ 정품 가격은 백화점에서 612만 원이다. 모조품은 5∼7% 수준인 30만∼40만 원에 팔린다. 김 씨는 디자인에 따라 가방 한 개에 5만∼7만 원을 받고 판매책에게 납품한다. 직업의 속성상 현찰 결제가 원칙이다. 짝퉁 샤넬 가방을 만들면서 월수입은 100만 원가량 늘었다고 한다.
김 씨는 “짝퉁 유통구조의 80%를 일종의 도매상인 판매책이 장악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판매책이 김 씨 같은 제조업자들에게 원자재를 대주면 제조업자는 주문량만큼 만들어 납품한다. 그러면 판매책은 여러 단계를 통해 소매상에 넘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류업계에서 1차 협력업체들이 2차 협력업체에 원자재를 공급하고 제품을 납품받은 뒤 대기업에 넘기는 임가공 구조와 비슷하다.
짝퉁 가방이라도 원단인 양가죽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온다고 했다. 0.09m²에 3000원 미만이면 저가품이고 3500원이면 쓸 만한 정도, 최상품은 7000원 정도라고 그는 설명했다. 샤넬 로고 모양 버클은 동대문에서 20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크기, 도금의 품질, 철의 종류 등에 따라 100원부터 시작한다. 그는 “판매책과 원자재 판매상을 이어주는 브로커들이 따로 있다”고 전했다.
브로커가 존재하는 이유는 짝퉁 유통구조가 점조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프라다’ 하면 ‘누구’라고 다 알았죠. 제조업자들은 직원도 40∼50명씩 뒀습니다. 그런데 단속이 심해지면서 다 흩어졌어요. 한 명 걸리면 줄줄이 잡혀가니 이젠 서로 모르고 지냅니다.”
김 씨는 “원자재를 받을 때마다 다른 사람이 오고 때론 퀵서비스로 보내 오기도 한다”며 “내가 만든 가방이 어디에서 얼마에 팔리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른바 명품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사람들이 명품에 미쳐야 명품을 못 사는 사람들이 짝퉁을 사고 우리 같은 사람들도 먹고사는 것 아니겠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특허청 특별사법경찰대는 9일 현장에서 가방 220개와 부속품 7100개, 원단 7롤, 도면 6개 등을 압수했다. 진품 시가로 치면 10억 원이 넘는다. 이런 짝퉁 제조업자들은 대부분 벌금형을 받는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큰애가 고2, 작은애가 중3인데 아빠가 전과자가 돼 큰일”이라며 어두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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