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 관계자를 직접 만나 비밀계좌 운용방안 등에 대해 협의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를 이 회장이 해외비자금 조성 및 관리에 직접 관여했음을 알려주는 단서로 보고 수사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2007년경 이 회장이 UBS 관계자를 국내로 불러 CJ그룹 재무담당 고위임원과 함께 만났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UBS 측에 비밀계좌 개설 및 운용방안, 계좌주 등록 방법, 예치금의 한도 등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후 CJ그룹이 이 은행에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보고 있다.
UBS는 스위스 바젤과 취리히에 본사를 두고 세계 각지에서 기업 및 부동산 투자, 인수합병 등을 진행하는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2005년 세계 1위 은행에 선정됐다. 전 세계 부호들의 비밀계좌를 개설해 주면서 ‘검은돈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2009년 미국 정부에 탈세 혐의가 있는 미국인 예금주 4450명의 정보를 넘기면서 약 80년간 이어진 ‘비밀계좌’의 전통이 깨졌다.
UBS는 올 2월 미국과 미국인 계좌정보를 사실상 제공하는 협정을 맺었지만 아직 한국은 계좌정보 제공 대상국가가 아니다. 이 때문에 검찰이 UBS 등에 개설된 CJ그룹의 차명계좌 관련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이 회장이 UBS뿐 아니라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등지의 다른 해외은행에도 이 같은 방식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한 뒤 재무담당 고위임원에게 비자금 조성 및 관리를 지시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2008년 검찰이 CJ그룹 전 재무팀장 이모 씨의 살인청부 혐의에 대해 수사할 당시 이 씨에게 돈을 빌려 운용했던 박모 씨는 검찰 수사에서 “이 씨로부터 ‘홍콩에 있는 이 회장 비자금이 3500억 원 정도이며 이 돈이 300여 개의 계좌에 분산돼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은 또 이 회장이 무기명 채권으로 관리하던 500여억 원을 현금으로 바꾼 뒤 자녀들에게 편법 증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국내에 조성한 비자금을 미술품뿐 아니라 고가의 악기 매입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해외 은행으로 보냈다고 보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50억 원 이상을 해외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법은 공소시효도 10년으로 길다.
이 회장은 또 2003년부터 최근까지 임직원 명의 차명계좌 수백 개를 이용해 CJ㈜와 CJ제일제당 등의 주식을 반복적으로 사고팔아 수천억 원의 양도차익을 남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만약 차명계좌의 실소유주가 이 회장으로 드러난다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처벌된다. ▼ 10억이상 조세포탈 드러나면 李회장, 5년이상 징역형 가능 ▼
대주주는 주식을 거래할 때 생기는 차익에 대해 반드시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세금을 고의로 내지 않은 액수가 10억 원
이상이라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고 포탈세액의 2∼5배에 달하는 벌금까지 내야 한다. 공소시효는 7년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주가를 고의적으로 띄웠거나 내부자 정보를 이용했다면 이 또한 처벌 대상이 된다.
검찰은 또
해외비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때도 CJ그룹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CJ그룹이 경기 화성시 동탄물류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외국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해외비자금을 투자한 뒤 땅을 팔아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도 수사 중이다. 또 홍콩 현지법인 ‘CJ글로벌홀딩스’의 자산 가치를 부풀린 뒤 CJ제일제당에 넘겨 수백억
원대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한편 서울지방국세청은 CJ그룹의 식품 계열사인 CJ푸드빌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CJ푸드빌은 ‘뚜레주르’, ‘투썸커피’ 등 14개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왔다. 국세청은 CJ푸드빌 본사와 해외법인 간의 자금 흐름 등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 관계자는 “5년마다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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