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민원창구에 비친 ‘비정규직 乙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7일 03시 00분


“계약직엔 결혼휴가 안줘… 결국 퇴사”
“정교사와 명찰 달라… 애들 보기 난감”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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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며 2010년 ‘모든 성인은 교내에서 명찰을 패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명찰은 정교사는 노란색, 계약직 교사는 초록색, 방문자는 분홍색이었다. 계약직 여교사 문모 씨(당시 58세)는 “아이들이 ‘선생님은 왜 식당 아줌마랑 똑같이 초록색 명찰을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설명하기 난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차별을 시정해 달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계약직 여직원으로 일하던 윤모 씨(당시 33세)는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근무 기간 1년 동안 휴가를 전혀 못 썼다. 그는 “월차는 물론이고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었다. 결혼할 때 신혼여행을 가려 하니 ‘계약직은 휴가를 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결혼과 함께 떠밀리듯 회사를 떠났고 퇴사 직후인 2010년 11월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며 권익위에 민원을 냈다.

최근 종영된 인기 TV드라마 ‘직장의 신’에서는 재계약에서 탈락할까 봐 임신 사실을 숨기는 사원이 등장해 비정규직들의 공감을 샀다. 권익위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을’로 꼽히는 비정규직들이 제기한 민원을 26일 정리해 발표했다.

2007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접수한 민원 1548건 중에는 급여 차별에 대한 것이 565건(36.5%)으로 가장 많았다. 휴대전화 카메라 제조회사에 다니는 A 씨는 “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은 상여금으로 기본급의 500%를 받는데 비정규직은 200%만 준다”며 지난해 11월 민원을 제기했다. △함께 야근을 하고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거나 △연말에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휴가, 휴일 등 근무여건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병원에서 계약직 간호사로 근무하는 B 씨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더니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진다’고 거절했다. 사직한 뒤 복직하라고 해서 이의를 제기하니 이번에는 복직 후 3교대 근무를 서약해야만 휴직을 허가해 주겠다고 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중소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C 씨는 “정규직 근로자는 단체 상해보험에 가입해 주는데 계약직이라고 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지난해 12월 민원을 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되레 피해를 봤다는 민원도 많았다. 파견직 생산 근로자 D 씨는 “2년 이상 파견 근무할 경우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하는 일은 같은데 2년마다 인력공급업체를 바꾸면서 재계약하고 있다”고 민원을 냈다.

최근 공공기관과 일부 기업에서는 계약직을 무기계약직(정년이 보장되지만 정규직 처우를 받지 않는 직원)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이들도 차별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E 씨는 “고용 불안은 줄었지만 정규직 대비 50%에 불과한 임금수준은 그대로”라며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 지위를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계약직#계약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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