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기온 20도이상 지속 시점… 서울의 경우 5월 27일로 당겨져
짧아진 봄?… 실제 큰 차이 없어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사는 주부 김하영 씨(37)의 옷장은 뒤죽박죽이다. 한겨울 코트부터 반팔 티셔츠까지 뒤섞여 있다. 김 씨는 “외투를 껴입고 다닌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여름 날씨”라며 “봄을 즐길 새도 없이 여름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직 5월인데 낮에는 30도가 넘어 7, 8월 같은 한여름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이 사라졌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온난화 같은 이상기후로 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봄이 짧아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26일 기상청에 따르면 1921년부터 10년 단위로 계절 추이를 분석한 결과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기상학적으로 계절을 구분하는 기준은 기온이다. 일 평균기온이 5도 이상으로 올라가 다시 떨어지지 않으면 봄, 평균기온 20도를 넘어 계속되면 여름, 20도 미만으로 떨어져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가을, 5도 미만으로 떨어져 계속 유지되면 겨울이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여름 더위가 찾아오는 시점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00년대(2001∼2010년)에는 5월 27일 여름이 시작돼 1950년대(1951∼1960년) 6월 11일에 비해 보름 앞당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의 지속기간도 1950년대 101일에서 2000년대에는 121일로 늘어났다. 여름이 일찍 찾아오고 길어지면서 봄이 끝나는 시기도 점차 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봄의 기간이 짧아진 것은 아니다. 여름이 길어진 대신 겨울이 짧아져 봄이 일찍 시작되기 때문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서울에서 겨울의 길이는 1960년대 123일에서 1980년대 111일, 2000년대 102일 등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봄이 시작되는 시기가 3월 하순에서 3월 초중순으로 당겨져, 봄 길이는 1960년대 75일, 1980년대 79일, 2000년대 76일 등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느낄까.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한 원인이다. 지난달 15일 서울 최저기온이 2.6도였다가 다음 날에는 낮 최고기온이 19.1도까지 올라갔다. 5월 초에는 쌀쌀하다가 중순 들어 갑자기 더워졌다. 계절이 헷갈리는 날씨가 여러 차례 이어진 것이다.
허진호 기상청 통보관은 “이미 봄이 왔는데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아직 봄인데도 갑자기 더워지는 등 헷갈리는 상황 때문에 봄다운 봄을 느끼지 못하고 끝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3, 4년 동안에는 혹한으로 겨울철 길이가 길어지고 실제로 봄의 시작이 늦어지기도 했다.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둬두는 힘이 약해져 찬 공기가 중위도인 한반도까지 내려온 것. 이른바 ‘온난화의 역설’이다. 올해의 경우 서울의 봄의 시작일은 3월 27일까지 늦어졌고, 이달 23일 여름이 시작되면서 봄의 길이가 57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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