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현장 첫 도착 - 도청진압 단독취재 본보 기자들의 증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7일 03시 00분


“택시 탄 신혼부부까지 끌어내 곤봉 폭행… ‘두환아 내 자식 내놔라’ 문구 아직 생생”

5·18민주화운동 당시는 신군부의 언론 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광주에 4차례에 걸쳐 9명의 특별 취재팀을 파견했다. 광주 현장을 직접 취재한 그들은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택시에 탄 신혼부부에게도 곤봉질”

당시 동아일보 광주 주재 기자였던 김영택 씨(77·전 동아일보 기획위원)는 1980년 5월 18일 몸이 아파 조직검사를 하고 병원을 나서던 중 시위대를 보게 됐다. “당시 광주에는 서울에서 김충근 기자가 내려왔어. 18일 당시 광주에 서울에서 기자가 내려온 중앙일간지는 동아 한 곳뿐이었어. 18일 오후 4시 정각에 거리에 있는 시민 전원을 체포한다는 지시가 떨어지더니 마구잡이로 곤봉으로 때리고 군홧발로 차고 그러더라고. 우리 사무실 옆방에도 젊은이 3명이 숨어들어 왔는데 곧 맞으면서 끌려 나갔어. 밖에서는 배달 학생도 끌고 가고, 택시 타고 신혼부부가 지나가는데 그걸 끌어내려서 패고…. 그 규수가 나체가 되다시피 하니까 병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흰 가운을 갖다 줬는데 공수부대가 또 그걸 때려.”

그는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도 취재수첩에 당시의 상황을 분 단위로 적었다. 이 취재수첩 3권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얀 옷을 많이 입던 시절이었는데, 옷에 피가 새빨갛게 물든 사람들을 차에 싣고 어디론가 가더라고….”

○ 시체 냄새 속 들리던 “하트만!”

사회부 소속이던 김충식 기자(59·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는 20일 오후 3시 광주에 도착했다. 현장 취재 기자가 본사에 전화를 걸어 기사를 불러서 지면에 싣던 시절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작동되던 전화선은 광주지검과 대검 간 비상통신망. 이마저 끊기자 김 기자는 장성우체국까지 다섯 시간을 걸어 본사에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도 했다.

“시민군이 군인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을 땐 해방구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 ‘두환아, 내 자식 내놔라’라고 흰색 천에다 빨간 페인트로 쓴 플래카드가 있었지. 전남대 조선대 부속병원 등 큰 병원들을 뒤지며 시체 수를 확인해보니 53구였어. 언론이 확인한 숫자로는 처음이었는데 동아일보에는 검열 때문에 실리지 못하고 외신이 받아서 썼지. 피투성이 시체가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시민군들이 ‘하트만! 하트만!’ 하면서 소리 지르고 다녀. 알고 보니 조혈제(造血劑) 이름이더라고, 수혈할 피가 없으니까.”

○ “그래도 역사는 기록해야” 말에 길 내준 대령

사진부 소속이던 김녕만 기자(64·현 월간사진예술 발행인)는 24일 광주로 들어갔다. 27일 새벽 계엄군이 점령한 전남도청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군인들이 막아섰다. 그곳 책임자인 듯한 대령에게 그는 “그래도 역사는 기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의외로 그 대령은 길을 터줘 기자로선 유일하게 도청에 들어갔다.

“사람 열댓 명이 계단 밑에 묶여 있었어. 처음엔 죽었나 싶었는데 살았더라고.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군인들이 묶여있는 시민들에게 총을 딱 겨누면서 포즈를 취해줘. 그러지 말라 하고 사진을 찍었지. 그러다 어느 공수부대 대위가 내려오더니만 ‘당신 뭐냐’라면서 내쫓더라고.” 하지만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본보 지면에 거의 실릴 수 없었다. 사진설명에 ‘폭도’라는 표현을 써야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는데 그럴 바에야 사진을 싣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들은 신군부의 엄혹한 검열에 걸려 독자에게는 제대로 전달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신문과 방송이 시위대에 대해 신군부의 요구대로 ‘무장폭도’ ‘난동’ 등의 단어를 쓸 때 동아일보는 ‘데모대’ ‘시위’ 등의 단어를 썼다. 당시 광주 상황을 다룬 사설에 신군부가 퇴짜를 놓자 1980년 5월 19일자부터 5일간 아예 사설을 싣지 않기도 했다.

김성규·박희창 기자 sunggyu@donga.com
#5.18#도청진압#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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