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인 요즘 농촌에는 주변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모내기가 한창인 시골 운동장에서 요란한 행사가 벌어지는 것. 최근 몇 년 사이 들판 가운데 운동장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나타난 새 풍속도다. ‘부지깽이가 곤두선다’고 할 정도로 일손이 모자라는 농번기에 어느 농민이 일을 팽개치고 운동장에 나가겠는가. 그나마 그렇게 할 젊은층도 거의 없다. 그래서 운동장은 대부분 외지인 차지다.
농민과 현지 주민들이 이용도 하지 않는 운동장이 왜 곳곳에 들어섰을까. 지방의원들은 자기 선거구에 운동장을 짓도록 자치단체에 떼를 쓴다. 자치단체장은 의회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타당성은 제쳐둔 채 예산을 배정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표’를 위해 의기투합하는 사이 예산집행의 공정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래서 오늘도 전국에는 운동장과 체육관이 늘어나고 있다.
울산 울주군을 보자. 12개 읍면에 인구 20만8661명인 이곳에는 운동장이 11개다. 조성비는 한 곳에 50억∼200억 원. 삼남면에는 국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천연 잔디 축구장과 육상트랙을 갖춘 종합운동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울주군은 500억 원을 들여 2017년까지 종합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13일 주민설명회를 연다. 결국 울주군은 읍면당 한 개꼴로 운동장을 ‘완비’하게 된다. 울주군의 재정자립도는 45.7%. 운동장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울주군은 “운동장과 읍면사무소 신축비는 원전 지원금이나 댐, 혐오시설 건립 대가로 다른 기관에서 예산을 받은 것이 많다”고 말한다. 군 예산은 많이 투입하지 않았다는 설명. 그러나 이것들 역시 모두 ‘국민 세금’이다. 농민에게 위화감을 주고 활용도도 낮은 운동장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 굳이 쓸 곳이 없다면 아끼는 게 공직자의 도리다. 주민들 사이에서 “자기 돈이면 저리 헤프게 돈을 쓰겠느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주민을 위해 살림살이를 잘하라고 뽑은 이가 민선 단체장이다. 단체장이 혈세 낭비를 못 하도록 감시하라고 지방의회를 두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을 동시에 뽑는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꼭 1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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