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개인금고로 숨는 5만원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7일 03시 00분


4개월간 발행잔액 3조7634억 늘어… 골드바-개인금고 판매량도 급증
“지하경제 양성화로 재산은닉” 분석

5만 원권을 무더기로 인출하거나 금(金)을 사들여 개인금고에 넣어 두는 고소득층이 늘고 있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과 고액 자산가들에 대한 과세 강화로 ‘장롱 속 현금’이 늘고 있는 것. 고소득층의 씀씀이가 줄어드는 상황에 이런 현상이 더해지면 시중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돈맥(脈) 경화’가 강화돼 위축된 경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시중에 풀린 5만 원권의 발행 잔액은 36조5299억 원으로 올 들어 4개월간 3조7634억 원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폭인 1조9266억 원의 2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5만 원권 발행 잔액의 급격한 증가가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 숨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올해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가 대폭 강화된 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세무조사, 해외계좌 추적 등이 강화되자 재산을 고액권 화폐로 바꿔 숨기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3월 말 현재 국민 신한 기업 하나 외환 등 5개 시중은행의 2000만 원 이상 정기예금 잔액은 134조4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136조4700억 원보다 2조 원 이상 줄었다. 반면 백화점의 개인금고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0%가량 늘었다.

국제 금값이 약세를 보이는데도 한국에서는 ‘골드바(금괴)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 생산 및 도소매업체인 한국금거래소 쓰리엠의 골드바 매출은 작년 12월 5억6000만 원에서 지난달 40억 원으로 늘었다. 2010년부터 골드바를 판매한 신한은행의 월평균 판매량도 지난해 200kg 수준에서 올해는 500kg 정도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풀고, 한은이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기 어렵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후해서도 고액 화폐권 발행 잔액과 금 판매가 크게 늘었다”며 “이런 혼란을 줄이려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의 범위와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불안심리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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