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암투병 엄마 위해 알바하다… ‘늑대’에 짓밟힌 소녀가장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1일 03시 00분


A 양은 고교 1학년이던 2011년 9월 자퇴했다. 학교 납부금, 급식비 낼 돈이 없었다. 집에는 암투병 중인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90대 초반의 할머니가 누워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연락이 닿지 않은 지 수년째다. 소녀가장이나 다름없는데도 부모와 할머니가 있다는 이유로 A 양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겠다는 A 양에게 별다른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자퇴서를 처리해줬을 뿐이다. 어느 곳에서도 보살핌과 도움을 받지 못한 A 양은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다. 엄마의 약값과 생활비가 절실했다. 기술도 경험도 없는 터라 광주 시내 한 당구장에서 2011년 12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구장 업주 이모 씨(33)는 첫날부터 “남자로서 나는 어떠냐”며 추근댔다. 딱히 보살펴줄 어른이 없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처지라는 걸 파악한 이 씨는 근무 6일째 되는 날 새벽 가게 문을 닫으며 검은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힘들게 일하는 데 힘이 나도록 고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업주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A 양이 고깃집에 앉자마자 업주는 “나는 사실 조직폭력배다. 친구들이 다 무서운 조폭이라 대부분 교도소에 있다”고 했다. 그러곤 잔뜩 겁먹은 A 양에게 술을 강권했다. 두려움에 술을 받아 마신 A 양은 이유를 알 수 없이 곧 정신을 잃고 고깃집에서 쓰러졌다. 업주는 기다렸다는 듯 차에 태워 인근 무인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다음 날부터 업주는 “알바를 관두면 친구들에게 성폭행 사실을 소문낼 것이고 경찰에 신고하면 조폭 친구를 시켜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마땅히 상의할 사람도 없었고 당장 생활비와 엄마의 약값이 필요했던 A 양은 지옥 같은 알바를 그만두지 못한 채 저임금과 성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가 받은 돈은 월 50만 원 안팎에 불과했다. 근무기간 1년 4개월 동안 월 2∼4차례의 성폭행을 당했다.

한 종교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에게 이 같은 피해 사실을 털어놨고 곧바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10일 A 양을 8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업주 이 씨를 구속했다. A 양이 성폭행 일시와 장소를 전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해 성폭행은 8회만 인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청소년들에게 술과 담배를 팔다 적발됐을 뿐 조직폭력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조사됐다. 10년 넘게 사귄 여성과 동거하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간 당한 피해로 정신적 충격이 큰 상황”이라며 “이제라도 A 양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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