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 중 달아나 25일 만에 검거된 이대우는 도피 기간에 광주 서울 부산 등 전국 9개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경찰의 검문검색은 한 번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5월 20일 오후 2시 50분경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조사를 받던 이대우는 수갑을 찬 채 수사관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가 달아났다. 3층 화장실을 빠져 나와 곧바로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1층 검색대는 보안요원이 없어 ‘무사통과’였다. 이대우는 청사 옆 담에 왼손에 채워진 수갑을 여러 차례 내려쳤다. 충격으로 수갑의 톱니가 두세 마디 밀리면서 약간 느슨해지자 수갑에서 왼손을 빼냈다. 그러곤 검찰 청사를 유유히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정읍시로 향했다. 긴소매 옷으로 오른 손목의 수갑을 가려 택시운전사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했다. 오후 4시 반경, 정읍에 도착한 이대우는 택시비를 내지 않고 달아났다. 이어 또 다른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역시 택시비를 안 내고 달아났다. 오후 6시 반경 광주 월산동의 한 마트에서 현금 30여만 원과 운동화를 훔쳤다. 시장에서 절단기를 구입해 인근 야산에 올라가 수갑을 잘라냈다. 남은 돈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해 한 모텔에서 밤을 보냈다.
이대우는 5월 21일 경기 수원시로 이동해 수원역 인근에 있는 재건축 예정 건물에서 며칠을 보낸 뒤 성남시로 은신처를 옮겼다. 5월 24∼26일 서울에서 어머니를 한 차례, 친동생을 두 차례 만났다. 어머니에게서 60만 원을, 동생에게서 현금 170만 원과 여름옷 6벌,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가발을 구입한 뒤 대담하게 낮에도 거리를 활보했다. 5월 27일 서울 종로에서 교도소 동기를 만나 50만 원을 받고 6월 1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나가지 않았다. 경찰이 첩보를 입수하고 형사들을 약속 장소에 잠복시켰지만 허사였다.
5월 29일에는 중국 조선족이 많이 사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보증금 100만 원 월세 17만 원짜리 월세방을 얻었다. 가까운 곳은 택시나 지하철을,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주로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6월 초 수원을 거쳐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즈음 경찰은 밀항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천에 수사력을 집중한 상황이었다. 이대우는 가는 곳마다 PC방에 들러 자신과 관련한 기사를 검색한 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는 부산에서 재건축 예정지역이나 철거를 앞둔 빈집, 공사장 등에 머물렀다.
그러다 13일 오전 폐가 철거작업 사전조사를 하러 온 김모 씨(51)에게 발견됐다. 김 씨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폐가 1층과 2층 사이 계단 중간 다락방에서 신발을 신은 채 자는 사람을 보고 ‘당신 여기서 뭐해요. 왜 여기서 잡니까’라고 따져 물었다”고 말했다. 이대우는 “잘 데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김 씨는 “다락방에 간단한 이불, 음료수 캔, 물 페트병, 과자류, 참외·밀감껍질, 담배 등이 널브러져 있어 노숙자라고 생각했다”며 “잠시 후 다락방에 다시 와 보니 이대우는 사라진 뒤였다”고 전했다.
경찰이 김 씨의 신고를 받고 폐가 주변에서 수색작업을 할 때 이대우는 이미 울산으로 이동해 야음동의 한 모텔에 투숙한 상태였다. 이대우는 이튿날 오후 6시경 다시 부산 해운대로 돌아왔고 이 주변에서 ‘이대우를 봤다’는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다. 부산경찰청은 신고가 접수된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검문·검색을 벌였고 이날 오후 6시 55분경 해운대역 앞길에서 이대우를 붙잡았다.
이대우에게 도피자금을 건넨 어머니와 동생은 형법의 ‘가족이나 친족이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도운 경우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특례조항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우에게 50만 원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한 교도소 동기는 범인 은닉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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