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말을 써요?’ 한국외국어대 부속 용인외고 3학년 박기정 양(18·국제과정)은 1학년 때인 2011년에 한 초등학생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탈북 고아 입양법으로 본 북한 인권’ 프로그램의 참가자로 뽑혀 미국에 다녀온 뒤 북한 인권을 주제로 연 사진전의 방명록에서였다.
“북한 인권 관련 단체와 협회 등을 둘러보고 한국에 돌아온 뒤 막연히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와 지역도서관 등에서 작은 사진전을 열었는데 많은 학생이 북한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북한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박 양)
북한의 인권 및 남북통일을 주제로 청소년들이 만드는 월간신문인 ‘웨이브(WAVE·World Association of Volunteering Elites)신문’이 창간된 계기였다.
학생들 소식지? 매달 1만 부 발행하는 ‘신문’
박 양은 웨이브신문의 대표이자 발행인이다. 2012년 5월 1호를 발행한 웨이브신문은 중고교생 10여 명이 직접 취재하고 쓴 기사를 담아 만든다. 청소년이 만드는 신문이니 학교 소식지 정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일반 신문을 인쇄하는 윤전기로 신문을 찍어 총 1만 부를 발행한다. 이 신문은 매월 마지막 주에 초중고교와 주요 기관·단체 등에 무료로 배포한다.
‘웨이브’는 원래 2010년부터 시작된 청소년 봉사동아리 이름이었다.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웨이브에서 활동하던 박 양은 우연한 기회에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북한인권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뜻이 맞는 학생 20여 명과 신문사를 만들었다.
“동아리에서 하는 활동이 한국을 알리는 일이다 보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북한에 대해 알리는 활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인터넷 블로그 형태로 운영할 생각도 �지만 개인이 관심을 갖고 블로그에 들어와야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블로그보다는 정기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들게 됐어요.” 제작비용 500만 원… 세뱃돈, 대회 상금으로 채워
웨이브신문을 만드는 학생들은 북한에 대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골라 소개하는 기사를 쓴다. 미국의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인터뷰 기사부터 북한을 주제로 한 책, 북한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 북한 음식, 북한 속담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박 양은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하루 동안 함께 생활하며 르포기사를, 평화운동가 등 북한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 인터뷰 기사 등을 썼다.
준비한 기사를 모아 신문을 발행하려고 하자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신문을 한 번 발행하는 데 편집디자인비, 인쇄비, 배송비 등으로 약 500만 원이 필요했다. 북한인권 관련 기관이나 단체 10여 곳에 e메일, 전화 등으로 도움을 구했지만 학생들이 만드는 신문에 지원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곳은 없었다. 결국 정 양은 자신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모은 350만 원을 내놨다. 대학에 진학한 뒤 세계여행을 하려고 용돈을 아끼며 모아온 돈이었다.
“처음에는 함께 신문을 만드는 친구들이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려 도움을 받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했어요. 조금씩 시간이 가면서 학교에서 학업우수상 상금으로 받은 100만 원을 내놓은 학생부터 세뱃돈을 모아 50만 원을 낸 학생, 매월 1만 원씩 후원하는 학생까지 많은 사람의 정성이 모여 신문을 만들 수 있었죠.”(박 양) “생활 속 인권운동 할래요”
신문을 제작한다고 하자 처음엔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대입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만든 신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웨이브신문 학생들은 이런 오해에 굴하지 않았다. 매달 한 번 정기모임을 갖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의 소모임 방을 활용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1년 넘게 신문을 발행했다. 신문이 1년 넘게 계속 발행되자 친구들도 점차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통일비전연구회’ 같은 단체에서 매달 100여만 원의 지원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 양은 2012년에는 웨이브신문 제작활동의 가치를 인정받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하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박 양의 꿈이 ‘인권운동가’는 아니다. 대학에 진학하면 공연기획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할 계획이다. “신문 제작을 하면서 인권운동은 직업을 갖고 일상 속에서 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제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인권을 주제로 콘서트도 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권문제를 알리고 싶어요.”
※ ‘공부스타 시즌2’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최하위권을 맴돌다 성적을 바짝 끌어올린 학생,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대학 입학사정관전형에 합격한 학생 등 자신만의 ‘필살기’를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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