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별이 네모난 액자 속으로 들어왔다. ‘ㅁ’자 한옥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다. 전날 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보던 하늘과는 운치가 달랐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툇마루의 나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려고 해도 시간이 없다면 도심 속 한옥에서 색다른 하룻밤을 즐겨 보자. 서울 종로구에는 60여 채의 한옥, 200여 실의 한옥게스트하우스가 있어 한옥 생활과 전통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기자가 아이와 함께 북촌한옥마을의 한옥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 봤다.
16일 서울 종로구 계동.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현대건설 사옥에서 중앙고등학교 방향으로 한참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기다란 골목 양쪽에 한옥이 줄지어 있었다. 골목 어귀에 앉아 있는 할머니, 재잘대며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옛 기억 속 고향집을 찾은 듯했다.
미리 예약한 ‘인우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30대 부부가 운영하는 이 한옥은 사랑방 2개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었다. 손님이 특별히 요구할 때는 본채의 방 1개도 내준다. 대문을 여니 아담한 마당이 나타났다. TV에서 보던 넓은 한옥과 달라 처음엔 집이 너무 좁다는 느낌도 들었다. 주인 김미경 씨(38·여)는 “대개 일반 가정집 한옥에서 남는 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규모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20m² 남짓의 사랑방 안에는 전통 가구와 도자기, 족자 등이 깔끔하게 배치돼 있었다. 방 옆에는 샤워기 세면대 좌변기 등을 갖춘 조그만 욕실이 딸려 있었다. 뜨거운 물은 잘 나왔다. 온돌방의 침구는 깨끗했다. TV는 없었지만 한옥을 즐기기에 TV가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에 모든 것이 갖춰진 호텔과 달리 마당으로 드나들 일이 많아 옷매무시에도 신경을 써야 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옥의 정취가 더 크게 다가왔다. 처마 아래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와 마당 한쪽 화단에 수줍게 핀 꽃을 보고 아이는 마냥 신기해했다. 아침에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식사는 기본으로 제공된다. 밥과 미역국, 반찬이 곁들여진 가벼운 아침이었는데 사전에 요구하면 서양식 조식 등도 가능하다. 오전에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
안채에 사는 주인과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솔잎차 한 잔을 놓고 마루에 앉아 주인과 저녁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주인 김 씨는 “2년 전부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왔는데 맏이가 태어난 이 집 이름에 아이의 이름을 붙였다”며 “시부모님도 종로구 가회동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어 대를 이어 한옥을 지키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문 밖을 나서면 살아있는 전통문화 체험장이다. 삼청동길, 인사동, 경복궁, 창덕궁, 운현궁 등을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내에서도 다도 및 다식 만들기, 붓글씨 써 보기, 한복 입어 보고 사진 촬영하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 인근 북촌공예체험관을 방문하면 요일별로 한지, 염색, 매듭 등 다양한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이용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오전 11시, 가격은 7만∼10만 원. 시설과 크기, 아침식사에 따라 20만∼30만 원에 이르는 곳도 있다. 가족 단위 관광객을 받지 않거나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없는 곳도 있어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그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불편했지만 종로구가 이달부터 관내 게스트하우스를 망라한 한옥체험살이 숙박 예약 전용 홈페이지(www.hanokstay.org)를 구축해 한결 편해졌다. 종로구 재동의 ‘한옥체험살이 안내센터’(02-741-0818)에선 전통 한옥의 구조와 특징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전문 안내요원이 게스트하우스 정보 제공, 예약 대행, 전통문화체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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