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장옥정’에선 숙종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이 멋진 폼으로 활을 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실제로 숙종은 궁술을 장려했다고 한다.
드라마 속 숙종처럼 활을 쏘고 싶어 26일 오후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뒤쪽의 국궁장(國弓場)인 황학정(黃鶴亭)을 찾았다.
황학정은 1898년 대한제국 때 고종이 만든 곳이다. 고종이 노란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노란 학(황학)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황학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아직도 황학정에는 고종의 어진(御眞)이 모셔져 있다. 황학정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이 어진에 목례를 한다.
황학정의 김진원 총무이사에게 기초 자세부터 배워봤다. 김 이사는 기자에게 초보자용 16파운드짜리 활을 들려줬다. 이는 16파운드의 힘을 줘야 활을 당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표적까지 거리가 145m 정도 되는데 이렇게 멀리 보내기 위해선 45파운드 정도의 장력을 가진 활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16파운드라고 해서 큰 힘이 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자세를 취해 보니 활을 쥔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김 이사는 “양궁은 활과 시위가 평평하게 잡는데 국궁은 비틀어 잡는 게 특징”이라며 “그래야 화살이 좌우로 가지 않고 가운데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세를 배우기 위해 몇 번 활을 당겼는데 30분도 안 돼 어깨가 결리고 시위를 잡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에는 피가 안 통하는 듯 마비 증상이 왔다. 이날 기자는 빈 활 당기기만 배웠고 정작 화살은 쏴보지 못했다. 김 이사는 “잘못 배우고 사대에 서면 화살이나 시위에 팔과 손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기초가 중요하다”며 “국궁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세 달은 배워야 사대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사대에 선 뒤에도 한 순(巡·5발)을 다 과녁에 맞히는 ‘오시오중(五矢五中)’을 하려면 1년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첫 오시오중을 하면 ‘접장(接長)’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김 이사는 “접장이 돼야 어느 정도 활을 쏠 줄 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국궁은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이날 황학정에선 백발이 희끗희끗한 사원(射員)부터 중년의 여성들까지 7, 8명이 나란히 사대에 줄지어 서서 145m 떨어진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활을 배운 지 1년 정도 됐다는 서영주 씨(52·자영업)는 “격하게 움직이는 무술이 아니라 집중력이 필요해 자기 수양에 좋다”며 “활을 쏘기 시작한 뒤로 팔 근육뿐 아니라 하체도 튼튼해졌다. 황학정에는 70, 80대는 물론이고 90대까지도 있는데 이분들을 보면 대부분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게 활동하신다”고 말했다. 4월 초부터 배워 현재 석 달째 국궁을 연습하고 있다는 김진걸 씨(49·감사원 근무)는 “팔 근력도 더 늘어나고 호흡조절을 위해 배우는 단전호흡법 덕에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궁장은 황학정 말고도 남산의 석호정 등 서울에 8곳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 황학정에선 매년 봄과 가을 2차례 사직동 주민센터와 함께 국궁교실을 연다. 한 달에 3만 원으로 저렴하다. 다음 교육생 모집은 9월에 한다. 남산 석호정은 교육비가 한 달에 4만 원이다. 두 곳 모두 평일은 물론이고 직장인들을 위해 주말에도 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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