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앞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던 구급차 안에서 바라본 장면. 일부 행인들이 흘긋거리고 있지만 비켜주는 사람도, 발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도 없었다. 서울 광진소방서 이강균 주임 제공
조모 씨(58)의 왼손 새끼손가락 두 마디가 잘린 때는 24일 오전 10시 3분. 작업 도중 컨베이어 벨트에 손가락이 끼여 들어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동료가 곧바로 신고해 6분 만에 119구급대가 도착했다. 조 씨는 피범벅이 된 장갑을 오른손으로 움켜쥔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구급차는 비상등과 사이렌을 켜고 접합수술이 가능한 대학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광진소방서 진광일 소방교는 구급차 안에서 환자의 손을 거즈로 싸매 응급처치를 한 뒤 도로 상황을 살폈다. 시간이 지체되면 자칫 접합수술을 하지 못하거나 절단 부위의 신경이 되살아나지 않는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구급차는 중앙선을 넘고 빨간색 신호에도 사이렌을 울려가며 병원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광진구 화양동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은 구급차가 지나가도록 양보해주지 않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비상등을 빤히 보면서 구급차 앞을 태연하게 지나갔다. 한 청년은 아예 구급차 앞을 막고 서서 뒤에 처진 친구를 손짓으로 부르기도 했다. 행인들은 구급차를 흘깃흘깃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비켜주거나 빨리 지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조 씨가 피 흐르는 손을 고통스럽게 부여잡고 있는 동안 구급차는 사람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학곤 소방장은 “응급환자를 싣고 건대입구역 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하도 화가 나 손발이 부르르 떨릴 정도”라며 “자기 식구가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느냐”라고 하소연했다.
현장 소방관들은 소방차 길 터주기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차들의 양보 상황은 일부 나아졌지만 보행자의 배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건대입구역 사거리 외에도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나 강남구 역삼동 강남대로 주변 골목 등 인파가 많이 몰리는 구역에서는 특히 구급차를 무시하는 보행자가 많다는 게 소방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강남소방서 문중기 소방사는 “강남역 CGV 극장 뒤쪽 먹자골목으로 출동하는 경우 사이렌을 울려도 사람들이 들은 척도 안 하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긴급 자동차라도 보행자 신호에서 사람을 치면 사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응급 환자가 있어도 구급차는 보행자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구급차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급차 운전을 맡고 있는 고정석 소방교는 “주말 저녁에 건대 주변 유흥가로 출동하면 취객이 앞을 막고 ‘니들이 뭔데 시끄럽게 하냐’며 구급차를 발로 차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 근처에 구급차를 대고 있는데 기사가 버스를 세워 놓고 욕설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구급차 뒤쪽에 취객이 매달리거나 어린이가 호기심에 따라붙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도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신고 후 구급차의 5분 이내 현장 도착률은 지난해 평균 54.8%로 2011년 62.9%에 비해 8.1%포인트 떨어졌다. 심장박동 정지, 신체 절단,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경우 구급차의 빠른 현장 도착이 생존과 죽음을 가르는 절대 요소다. 광진소방서 이강균 주임은 “‘4분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심박 정지 환자의 경우 4분 안에 심폐 소생술을 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분초를 다투는 구급차의 중요성을 시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구급차에 내 가족이나 친구가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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