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직원 내세워 中企 설립… 2만7000개 업체 물량 가로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8일 03시 00분


■ ‘벼룩의 간’ 빼먹은 대기업들

정부는 2006년부터 ‘중소기업자 간 경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공조달 시장 202개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참여를 차단하는 것으로 시설, 자금, 인력 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청의 전면 실태조사에서 적발된 대기업들은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위장 중소기업들을 앞세워 지난해 한 해 동안 708억 원어치를 납품하며 배를 불렸다.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2만7000여 개 중소기업에 돌아갈 물량이었다.

○ 레미콘 업체, 세종시 건설경기에 편승

적발된 위장 중소기업 36개 가운데 83%인 30개가 레미콘 업종이었다. 이들은 정부 주요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하며 건설경기가 좋아진 틈을 타 이 지역에 몰려 레미콘 관수(官需) 물량을 납품했다. 또 2008년 6월 이후 공장을 임차한 업체에도 한국산업규격(KS)을 부여해 다른 업종에 비해 위장 중소기업을 설립하기 쉬운 점도 작용한 것으로 중기청은 풀이했다.

건설자재 업체 삼표그룹은 건양레미콘, 보명레미콘 등 4개 위장 중기를 앞세워 지난해에만 139억83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성신양회는 고려레미콘, 성신산업 충주·공주공장 등 6개 위장 사업자를 통해 102억8400만 원어치의 사업을 수주했다. 동양그룹은 진천레미콘, 화성레미콘, 청주금성 등 5개 업체를 통해 93억38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 대기업이 땅 주고, 설비 주고

대기업들이 가장 흔하게 이용한 수법은 임직원을 내보내 별도 중소기업을 차린 뒤 공장이나 토지 대부분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적발된 위장 중소기업 36곳 중 31곳이 회사 자본금보다 더 많은 금액의 자산을 대기업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었다.

지난해 공공조달 시장에서 가장 많은 191억1300만 원의 부당 매출을 올린 가구업체 리바트의 위장 중소기업 쏘피체가 대표적이다. 리바트는 2009∼2011년 평균 매출이 4000억 원에 달해 지난해 중소기업을 졸업했다. 중소기업기본법은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이 1500억 원을 넘으면 대기업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비해 리바트는 2011년 5월 종업원 지주회사를 세웠다. 판로지원법상 대기업 대표나 임원이 출자한 회사는 대기업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종업원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쏘피체는 자본금의 12배가 넘는 60억 원어치의 공장과 설비 등을 리바트로부터 빌려 썼다. 막상 제품을 납품할 때는 대기업 상표인 ‘리바트’를 부착했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면서도 대기업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쏘피체는 전체 매출 323억 원의 60% 가까이를 공공조달 시장에서 벌어들였다.

○ 대기업 회장 딸이 중소기업 대표

일부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지분을 절반 가까이 보유하고 오너의 딸을 중소기업 대표로 앉힌 뒤 중소기업 행세를 하기도 했다. 금성출판사가 49.6%의 지분을 소유한 온라인 교육업체 푸르넷닷컴의 대표는 금성출판사 회장의 둘째 딸이다. 금성출판사 대표와 2명의 등기임원은 그대로 푸르넷닷컴의 등기임원이다. 현행법상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지분을 30% 이상 보유하거나 대기업 대표가 중소기업의 임원을 맡으면 해당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본다.

금성출판사는 자사 대리점을 통해 푸르넷닷컴의 영업을 도운 사실도 드러났다. 푸르넷닷컴이 지방자치단체와 초중학교에서 온라인 교육사업 물량을 수주하면 금성출판사의 지역 대리점이 고객을 관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었다. 금성출판사는 지난해 푸르넷닷컴을 통해 11억 원어치의 정부 물량을 수주했다.

이 밖에 한샘, 대상, 네패스, 다우데이터 등 4개사는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위장 중소기업을 운영해오다 적발됐다.

강유현·김호경 기자 yhkang@donga.com
#중소기업#중소기업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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