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이라는 걸 올려야 하는데…. 형무소에 들어가 있던 걸 공적으로 할 수도 없고 애매하다.”
“(그래도) 1000만 원 냈잖아. 그걸 어떻게 할 거냐.”
올해 1월 법정단체인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의 공적심사위원회(정부 훈·포장 추천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오간 대화다. 연합회는 2004년 제정된 ‘직능인 경제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둔 직능 단체들의 모임이다. 이 단체는 정부 훈·포장을 추천해 주는 대가로 회원들에게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찬조금을 받았다가 안전행정부에 적발됐다. ▶본보 4월 10일자 A12면 참조-“국민훈장 동백장은 4000만원”… 직능연합 ‘훈-포장 장사’
동아일보는 연합회의 2009∼2013년 공적심사위 녹취 파일을 입수했다. 이는 회의록 작성을 위해 녹음된 것이다.
○ 훈장은 4000만 원, 포장은 1000만 원…
2009년 2월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정부 포상에 따른 찬조금 액수를 정했다. 한 참석자가 “8년 동안 줘 봤는데 5000만 원 내는 사람, 1000만 원도 안 내는 사람 가지각색이다. 권고 금액을 정해야 한다. 안 정하면 아무도 안 낸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자 참석자들은 즉석에서 훈장은 4000만 원, 포장은 1000만 원, 대통령 표창은 500만 원, 국무총리 표창은 2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는 대목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액수 결정 뒤 “이 부분은 기록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추천 대상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얘기하지 말고 만나서 설득하는 방향으로 하자”는 발언도 나왔다.
같은 달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 한 참석자는 “공적이 많아도 (연합회에) 물심양면으로 기여 안 하면 안 된다”며 “공적이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러면 딴 데 가서 받으라는 것”이라며 찬조금을 포상의 주요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다른 이들도 동의했다. 안행부가 포상 지침에서 ‘특정 조직에의 기여도(회비나 기부금품 납부 등)를 심사기준에 반영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안행부, 포상 줄이고 개선안 만들기로
한 참석자는 개인적 고충을 털어놨다. 지인인 A 씨가 포장을 받기 위해 연합회에 1000만 원을 내고 1년을 기다렸는데 B 씨가 1500만 원을 내기로 하는 바람에 밀렸다는 것. 그런데 정작 돈을 낼 때가 되자 B 씨는 ‘1000만 원만 내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그는 “1500만 원을 내면 (B 씨에게) 양보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A 씨에게) 내가 사기로 몰린다”며 걱정했다.
○ 경매식 추천, 사전 입금 유도도
공적 심사 도중 전화해 찬조 의사를 확인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회의에서는 500만 원을 낸 모 협회 회장대행에게 전화해 2500만 원을 추가로 내겠다는 뜻을 확인하고 국민훈장 동백장 추천을 확정했다. 회의를 주재한 심사위원장은 “오늘이 월요일이니 수요일까지 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선 찬조금 액수 순으로 추천 대상자를 결정하는 ‘경매식 추천’도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돈을 낸 순서대로 (추천이) 되는 것”이라며 각각 1200만 원, 1000만 원, 500만 원을 낸 신청자 3명을 포장 대상으로 추천하기로 했다. 250만 원을 낸 신청자는 탈락했다. 상을 받고 나서 돈을 내겠다는 모 협회에는 “그건 안 되는 얘기”라며 사전 입금을 유도했다.
안행부는 1일 연합회가 정부 포상 추천 대가로 올해만 회원 9명으로부터 2570만 원의 찬조금을 받아 단체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것을 적발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연합회를 경찰에 고발하고 포상 추천을 금지시켰다”고 말했다.
본보는 해명을 듣기 위해 오호석 연합회 총회장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연합회 관계자는 “일부가 정부 포상 수여 행사에 필요한 실비를 냈는지 몰라도 포상을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안행부는 그 밖에도 정부 포상 추천 과정에서 부당한 기준을 정하거나 정부 지침을 위배한 새마을중앙회, 바르게살기중앙회 등 7개 단체의 포상을 줄이고 연말까지 ‘정부 포상 종합 운영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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