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모 씨(27·여), 류모 씨(27)는 ‘속도위반’ 부부다. 결혼 당시 윤 씨는 임신 4개월이었다. 조금씩 불러오는 배 위로 프릴(물결 모양의 장식)이 달린 풍성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윤 씨가 임신 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 놀랐던 예비 시어머니도 결혼식 내내 기쁜 얼굴로 신부와 배 속 아기를 챙겼다. 부부의 친구들은 아기 옷과 포대기, 인형 등 각종 아기용품들을 선물로 들고 와 축하했다.
요즘 젊은 신혼부부에게 ‘속도위반’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당당히 혼전 임신 사실을 공개한 뒤 안전하고 쾌적한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속도위반 마케팅’ 시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본보 기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웨딩박람회를 찾아 상담을 요청했다. “임신한 신부에게 맞는 드레스가 있느냐”고 묻자 웨딩플래너는 “그런 신부님들이 많이 찾아오세요”라며 임신부 웨딩드레스를 보여줬다. 허리 라인이 가슴께로 올라가고 치마 품이 종 모양으로 풍성하게 들어간 ‘벨 라인’ 드레스였다.
‘웨딩나라’ ‘신부의 자격’ 등 결혼 준비를 위한 인터넷 카페와 예비 신부의 블로그에는 임신 개월 수에 맞는 웨딩드레스를 추천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웨딩플래너 김은선 씨(41·여)는 “먼저 임신 상태를 밝히고 임신부용 드레스를 문의해오는 고객이 많아졌다. 드레스 맵시 외에도 웨딩 촬영 시간을 단축하는 등 임신한 신부를 각별히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혼여행 업계에서도 임신부 신혼여행 상품이 인기 있다. 주요 여행전문업체 사이트에서는 허니문 상품 중 ‘베이비 허니문’ ‘태교 허니문’ 등의 이름으로 맞춤형 상품을 제공한다. 한 여행사는 창사 기념으로 임신한 신부에게 50%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드림리조트의 공대성 차장은 “‘베이비 허니문’은 신부와 아기의 안전을 위해 비행 거리가 4시간 이내인 지역으로 추천한다. 입덧하는 신부를 위해 음식에 강한 향신료를 쓰는 동남아 지역 대신 휴양 시설이 잘 갖춰진 괌이나 사이판이 인기 있다”고 말했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공개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혼전 임신을 숨기거나 임신 중절 수술을 하는 사례가 줄어든 것”이라며 “혼전 임신이 책임감 있는 결혼으로 이어지고 임신한 신부를 배려하는 상품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연예인 등 유명 인사의 혼전 임신 공개 등 사회적 분위기 변화도 이러한 추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배우 장동건, 고소영 씨 부부는 2010년 결혼 발표 당시 임신 4개월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올해 1월에 결혼한 배우 엄태웅 씨 부부도 임신 3개월차 ‘속도위반’ 부부였다. 지난달 4일엔 배우 김재원 씨가 임신 3개월인 예비신부와의 결혼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늦은 결혼으로 불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혼전 임신을 할 경우 낙태하지 않고 오히려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웨딩컨설팅업체 듀오웨드가 지난달 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혼 남녀 374명 중 ‘혼전 임신’을 한 채 결혼했다고 답한 사람이 30.5%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웨딩업계 종사자들은 최소 열 커플 중 한 커플 정도가 혼전 임신인 것으로 체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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