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장구채가 봉긋한 타원형의 꽃봉오리에서 하얀 꽃을 터뜨렸다. 세계적으로 한라산 정상에 2, 3그루만 존재하는 특산 식물인 한라장구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한라장구채가 있는 보존원의 고산식물원에는 하얀 솜털처럼 불면 날아갈 듯 날개를 편 한라개승마, 땅바닥에 붙어 노란 꽃을 피운 제주양지꽃, 연보랏빛의 백리향 등도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왔다. 화산쇄설물인 송이(화산 폭발 시 고열로 만들어진 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시로미는 한창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보존원의 핵심인 고산식물원은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에서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희귀 특산 식물을 도심 인근 한라수목원에서 손쉽게 관찰하는 기회를 줬다. 제주도 한라산연구소가 2017년을 목표로 추진하는 보존원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산림청 등의 예산 지원을 받아 한라수목원 인근 1만6774m²를 매입하고 먼저 고산식물원 조성에 착수해 최근 외형을 갖췄다.
한라산연구소는 고산식물의 활착에 토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식물 종에 따라 토양을 달리하면서 자생지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 송이층의 두께는 물론이고 화산회토의 성질까지 감안하면서 세밀하게 작업했다. 이 덕분에 인공 증식한 고산식물을 이식한 지 불과 1년 이내에 개화까지 성공시켰다.
인위적인 고산식물원 조성은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학계와 관련 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주지역은 식물 종 다양성 분야에서 다른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주지역 자생식물 2000여 종 가운데 멸종위기, 희귀, 특산 식물은 400여 종에 이른다. 난대성, 아열대성 식물이 많이 자생하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희귀 특산 식물을 인공적으로 증식한 연구 결과는 보존원 추진의 밑거름이 됐다.
이 보존원은 고산식물원, 양치식물원, 관목원 등 크게 3개 영역으로 조성된다. 제주지역 희귀 특산 식물 33종 8500여 그루가 식재될 예정이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수목시험과장은 “고산식물원은 일반인이 쉽게 접하지 못한 멸종위기, 희귀 식물에 대한 교육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멸종 위기에 놓인 식물의 종 보존은 생물 종 다양성뿐만 아니라 미래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식물 가치 연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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