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후 7시 제주 서귀포시의 한 노래방. 아버지 농장에서 일할 때 외에는 거의 집밖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인 허모 씨(21·일용직 근로자)는 오랜만에 중학 동창들을 만났다. 그는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3차에 걸쳐 술을 마신 뒤 이튿날 오전 3시 40분경 택시를 타고 집 근처에 내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집에서 직선거리로 50여 m 떨어진 한 가정집에 몰래 들어갔다. 평소 이 집에 모녀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방에서 혼자 자고 있던 A 양(10)의 목을 조르고 성폭행한 뒤 도망쳤다.
귀가한 A 양의 엄마는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25일 오전 5시경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체모 11개를 확보한 뒤 이 일대 거주 남성 및 제주 내 동종범행 전과자 1370명의 구강세포를 채취해 DNA 확인작업을 벌인 결과 범인이 허 씨인 것으로 밝혀냈다.
허 씨는 경찰의 탐문수사가 진행되던 지난달 27일 일자리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원룸을 구했다. 그는 3일 원룸을 찾아온 경찰관이 구강세포를 채취할 때도 태연하게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성폭행 용의자와 허 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고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던 허 씨를 붙잡았다.
허 씨는 검거 당시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다 경찰이 DNA가 일치한다는 자료를 제시하자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현장에서 내 DNA가 나왔다면 범행을 인정하겠다”면서도 “그 가정집에 성인 여성 2명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아이가 있었는지는 몰랐다”며 아동 성폭행 사실은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허 씨가 성폭행을 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10세인 아이와 성인은 신체적으로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데다 허 씨가 범행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피임도구(콘돔)까지 준비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허 씨는 상해전과만 한 번 있다.
경찰은 건장한 체격(키 175cm, 몸무게 70kg)의 허 씨가 가냘픈 A 양의 목을 심하게 졸라 피가 뭉치는 울혈 현상까지 나타난 것으로 미뤄 살해할 의도까지 있었는지를 추궁하고 있다.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아동성범죄 용의자가 피임도구를 준비했다면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허 씨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 지난해 8월 30일 새벽 전남 나주시의 한 가정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8세 여아를 이불째 납치해 인근 다리 밑에서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고종석(24) 사건과 유사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허 씨가 집에 홀로 은둔하면서 음란물 등을 탐닉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11일 허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