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이 13일 오후 대전 중구 대전프랑스문화원 분원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회 작품 가운데 남농 허건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2001년 4월 27일자 동아일보를 비롯해 국내 언론에는 ‘유럽 유학 1호 한국인 화가’, ‘월북작가’로 불리던 배운성(1900∼78)의 작품이 국내로 돌아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배운성이 1940년 독일군의 파리 점령 직후 귀국하기 전까지 파리 근교 라뤼슈 예술창작촌에서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48점이 전시됐다. 그는 독일 베를린미술종합대에서 수학한 뒤 귀국해 홍익대 미술학과 초대 학과장을 지내면서 국내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6·25전쟁 때 월북했다. 그의 작품이 온전히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파리 유학 중이던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55)의 수집벽 덕분이었다. 전 원장은 라뤼슈 예술창작촌이 파리의 미술계에 유통시킨 것으로 보이는 이들 작품을 파리의 화상 등으로부터 사들였다.
이제는 수집가(컬렉터)로서 명성을 높이고 있는 전 원장이 11일 대전 중구 대흥동 대전프랑스문화원(분원)에서 ‘버려진, 그리고 되살아난 작품들’ 전시회를 열었다. 내달 28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회는 전 원장이 벼룩시장과 풍물시장, 골동품 수집상 등에서 최근 모은 회화 조각 사진 31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수집의 권유’ 정도의 부제를 붙여도 좋을 전시회의 취지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소장품을 과시하거나 매매하기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관람객들에게 수집이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 구미가 당기거든 수집 아마추어(애호가)의 세계에 입문할 것을 권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예술품은 성가(聲價)에 따라 한동안은 뭇사람의 온갖 관심을 받으면서 근사한 공간에서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온갖 자태를 뽐내지만 유행이 지나면 박물관의 수장고나 한때는 연인이었을 소장자들의 골방에 유통기간 지난 온갖 잡동사니들과 함께 힘겨운 자리다툼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며 “이런 ‘화장발’ 없는 맨얼굴의 예술품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수집가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치 있는 예술품을 발견해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점에서 수집가는 ‘예술 지킴이’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처음에는 주변에 보이는 그림이나 사진을 자신의 방을 꾸미는 데 활용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다. 그러다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면 그것에 집중해 자신의 수집 세계를 구축하고 감성 차원에서 시작하되 꼭 학습의 과정을 거치라고 권하고 싶다”며 “평생교육원이나 백화점의 무료강좌 등을 활용해 수집 분야의 이론을 익히면 훨씬 많은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프랑스 유학 시절 수집 활동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학비와 생활비의 대부분을 충당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배운성의 작품 48점은 거래된 적은 없지만 상당한 고가로 추정된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 대부분은 대전과 서울의 풍물시장 등지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것들. 전 원장은 “화랑에 전시된 좋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력이 있어야만 수집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안목이 길러지면 웬만한 직장인보다는 수입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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