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에 사는 조모 씨(당시 47세)는 2007년 과속으로 달리던 대리운전 차량에 치여 경추가 골절돼 목 아래가 마비됐다. 사고가 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조 씨는 아내에게서 “사회보장 혜택을 더 수월하게 받기 위해 거짓 이혼을 하자”는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러나 막상 이혼을 한 뒤 아내의 태도는 돌변했다. 피해보상금 2억 원을 챙겨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조 씨는 아이들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내는 끝내 연락을 피했다.
조 씨의 사례처럼 ‘반칙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피해자의 신체를 망가뜨리고 단란했던 가정마저 파괴했다. 피해자들은 각종 장애 때문에 일을 그만두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고 가정이 해체되는 고통까지 짊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통연구원 정남지 박사는 16일 서울 중구 삼성화재 본사에서 열린 ‘반칙운전 추방 및 교통문화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이 같은 ‘반칙운전 교통사고의 피해 실태’를 발표했다. 조사는 장애인 피해자 188명과 일반 피해자 457명 등 총 645명을 대상으로 4, 5월 전화와 온라인 설문으로 진행됐다.
교통사고로 장애인(1∼6급)이 된 이들은 실직, 가정 해체 등 2차 피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 피해자의 70.7%가 교통사고의 영향으로 실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사고로 얻은 장애 때문에 스스로 퇴직한 사례가 80.5%로 가장 많았다. 업무능력이 떨어져 사직을 권고받거나 회사에서 아무런 논의나 통보 없이 해고당했다는 경우도 12.8%였다.
재취업도 일반 피해자보다 어려웠다. 장애인 피해자는 교통사고 후 26.3%만 재취업에 성공했다. 첫 번째 재취업에 걸린 평균 기간에서도 장애인 피해자는 3.1년, 일반 부상 피해자가 1.65년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실직기간(구직기간)이 2.5개월이었다.
사고 후 이혼, 별거, 배우자의 가출 등 배우자와 헤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체 장애인 피해자 188명 중 41명(21.8%)이었다. 이 중 사고 당시 미혼이던 51명을 제외하면 기혼자(137명) 3명 중 1명(29.9%)은 배우자와 헤어졌다. 배우자와 헤어진 이유로는 절반 이상(58.5%)이 경제 여건 악화를 꼽았다. 후유증이나 장애로 인해 배우자의 부담감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34.1%나 됐다.
장옥희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상담실장은 “사고에 따른 장애로 경제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신체적·경제적 스트레스를 받은 상당수 피해자가 우울증, 알코올의존증, 가정폭력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로 인한 피해자 가족의 부담이 가정 해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