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국, 박물관 하나 차릴 만큼 작품 사들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8일 03시 00분


[전두환 일가 이틀째 압수수색]전두환 일가 유별난 미술품 수집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압수수색에서 미술품이 쏟아져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진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미술 갤러리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갤러리 관장과 큐레이터들은 전재국 씨(54)의 미술품 수집 사실 자체를 꺼내는 것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한 갤러리 관장은 재국 씨의 미술품 수집이 탈세와 비자금 등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취재진을 피했다.

하지만 서울 인사동을 중심으로 한 골동품 시장에서는 몇 해 전부터 전 씨 일가가 문화재급 미술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미 박물관 하나는 너끈하게 차릴 정도로 사들였단 얘기가 파다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나 장남인 재국 씨가 직접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조심스레 일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미술품을 보유했는지는 그동안 외부로 드러난 적이 없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미술품 구입이 재산을 은닉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CJ그룹 탈세·횡령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미술품 수집을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물론 재국 씨와 차남 전재용 씨(49)는 미술에 대한 상당한 안목과 애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부터 재국 씨와 친분관계를 가져온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이사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재국 씨는 1980년대 후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유학 시절 아주 추운 겨울날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 위해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전시장 밖에 길게 줄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홍 이사장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은 재국 씨가 이때 처음으로 미술품이 사람에게 주는 큰 영향력을 느꼈고 이 일이 미술 애호가가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재국 씨는 1991년부터 도서출판 시공사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공사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한만영 주태석 배병우 구본창 등 30, 40대 국내 작가들의 개인화집을 ‘아르비방’ 시리즈란 이름으로 펴냈는데 당시 미술계는 ‘사망 작가가 아닌 현역 작가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화집’이라고 널리 평가했다.

차남인 재용 씨는 수준급의 그림 실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이사장은 “재용 씨는 20세기 영국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 유사한 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등 상당한 실력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동안 미술품 수집을 재산 빼돌리기 수단으로 이용했던 인사들도 대부분 미술에 상당한 안목과 지식을 지녔던 점을 감안해 전 씨 일가가 미술품을 구입한 자금원, 구입 후 관리내용 등을 면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한편 검찰이 16일 재국 씨 소유인 허브빌리지에서 압수한 대형 불상(사진)은 태국이나 미얀마에서 조성된 유물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계란형 얼굴과 머리 위 화관 등 13, 14세기 태국 수코타이 왕조의 불상 특징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17세기 이전 진품이 맞을 경우 최소 수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한 고미술상은 “엇비슷한 동남아시아 불상은 국내외 시장에서 종종 나오는데, 2m가 넘는 대형은 10억 원 안팎에 팔린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백연상·고미석·정양환 기자 baek@donga.com




#전두환#압수수색#미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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