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나의 가족’이라며 아꼈던 아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털어 갖고 싶었던 단종된 기타를 사러 간다며 들떠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10대였다. 그가 일했던 호프집 주인은 그를 두고 “완벽했다. 일을 어찌나 잘하고 서글서글한지 아르바이트생 중에 시급을 가장 많이 줬다”고 했다. 그의 은사는 “영리하고 심성이 고우며 감수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많은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다양한 말로 칭찬하던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보고 경악했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반응이었다. “꿈에도 몰랐어요. 그 애가 그런 짓을 하리라곤….”
주위 사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놀라게 한 주인공은 8일 발생한 ‘용인 살인 사건’의 피의자 심모 군(19). 심 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 양(17)을 모텔로 유인해 성폭행한 뒤 김 양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목 졸라 살해했다. 그는 16시간에 걸쳐 시신의 살점을 도려냈다. 경찰에 붙잡힌 이후에도 “공포영화를 가끔 보기도 하는데 영화처럼 한 번쯤 흉내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등 태연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잔인한 범죄자를 통칭해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지만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서 ‘소시오패스’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학자들도 “자신의 잔혹함과 악함을 착하고 친절한 모습의 가면으로 최대한 감추고 있는 심 군은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와 어떻게 다를까.
양심 없는 인간
대중 용어로 자리잡은 사이코패스에 비해 ‘소시오패스’는 낯설다. 흔히 알려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차이점은 이렇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선천적인 것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며 법적 윤리적 개념이 형성되지 않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이를 뜻한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인 영향으로 탄생하며 나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뜻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부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정신분석학 및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정식 용어가 아닐뿐더러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모두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ASPD)를 지닌 인물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설명이다. 둘 다 ASPD에 속하며 잔혹함 등의 정도에 따라 편의상 이름만 달리 붙이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소시오패스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소시오패스도 선천적인 것이어서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소시오패스가 공감 능력이나 죄책감이 없고 자신의 이익과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들을 통칭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남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종하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등의 특성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한마디로 “당연히 있어야 할 양심이 없는 인간”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학부 외래교수 브루스 페리 씨는 저서 ‘개로 길러진 아이’에서 그가 실제로 상담한 레온(가명)을 통해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레온은 16세에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만취 상태로 각각 12, 13세인 두 소녀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요구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이들을 살해했다. 시신을 성폭행하고 발로 차고 수차례 밟기도 했다. 레온은 그를 만나러 온 정신과 의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의사가 어떤 인물인지 탐색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의사가 거짓말이 통하고 동정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파악한 레온은 “거칠게 반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죽였다. 피해자들이 살인을 조장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이키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다. “부츠를 갖다 버렸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현장에 발자국이 남았던 데다 부츠에 핏자국이 있었거든요.” 페리 교수는 그를 두고 “학교에서 지리 숙제를 발표하는 것 같은 말투로 감정 없이 살인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이 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인 포식자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소시오패스는 모두 강력범인가
“소시오패스는 ‘양심 없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잔혹한 범죄자들에 한해 적용하는 것은 편협한 해석이죠. 뉴스만 봐도 양심도, 죄책감도 없고 자신만 생각하며 행동하는 각계각층의 소시오패스가 매일 등장하지 않나요? 주위에도 널려 있는 거죠.”(심영섭 심리학 박사·영화평론가)
하버드대 의대 임상강사이자 심리학자인 마사 스타우트 씨는 전체 인구의 4%가 소시오패스라고 주장했다. 전체 인구의 4%인 만큼 교도소에 소시오패스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정신분석학계에 따르면 미국 내에 수감된 수형자들 중 평균 20% 안팎만이 소시오패스다. 그렇다면 나머지 소시오패스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스타우트 씨는 “우리는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폭력적인 범죄자 소시오패스보다 더 많은 ‘비폭력적 소시오패스’의 존재를 알지 못하며 알아보지도 못한다”라고 했다.
소시오패스는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심 군과 같은 유형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소시오패스, 사회적 지위나 자신의 카리스마를 악용하는 지능형 소시오패스 등으로 나뉜다. 살인자 소시오패스와 후배의 공을 상습적으로 채가면서도 상사에게는 아부하며 자신의 일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직장 동료는 언뜻 전혀 다른 유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심이 없고 남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본질은 똑같은 소시오패스라는 것이 스타우트 씨의 설명이다. 문제는 범죄자 소시오패스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커밍아웃’을 하게 돼 격리되는 반면 지능형 소시오패스들은 정체를 숨기고 사회 곳곳에 숨어 양심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데 있다.
소시오패스 중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기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아 피해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심 군 역시 주위에서 칭찬이 쏟아질 정도로 본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살았다. 스타우트 씨의 저서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에는 자신의 모습을 숨긴 뒤 성공한 소시오패스인 스킵(가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 폭죽을 개구리 입에 넣어 개구리를 터뜨리며 노는 일을 즐겼던 스킵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냉철하며 자신의 악행으로 타인이 놀라거나 무력해지는 것을 즐기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뒤 사람들을 이용하는 뛰어난 능력을 악용해 광산용 폭파 장비 업체에 입사해 초고속으로 최고경영자(CEO)가 되는가 하면 억만장자의 딸과 결혼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후배 직원을 성추행하려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을 부러뜨리고 주가 조작 등 사기 혐의로 증권거래위원회에 고소당했지만 특유의 술수로 협상해 문제를 해결한다. 일부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조직원 거의 모두는 그가 사람을 이용하는 데 능숙하고 멋진 모습으로 치장한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용당한다.
한 심리학자는 “직위를 이용해 인턴 엉덩이를 만진 뒤 뉘우치기는커녕 교묘한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는 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 씨, 29만 원밖에 없다며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동정심에 호소한 전두환 전 대통령도 넓은 범위에서 소시오패스”라며 “그나마 이들은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소시오패스 커밍아웃’을 한 셈이지만 여전히 정재계 등 사회 유력 분야에 똑똑한 소시오패스들이 숨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고, 또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방법은 없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와 영화에는 ‘소시오패스 캐릭터’가 꼭 등장한다. 드라마 ‘야왕’의 주다해(수애 분), ‘돈의 화신’ 지세광(박상민 분), ‘추적자’ 강동윤(김상중 분), ‘상어’ 조상국(이정길 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민준국(정웅인 분), 영화 ‘화차’의 차경선(김민희 분) 등 각계각층의 소시오패스 캐릭터는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상물 속 소시오패스들은 날이 갈수록 악독해지고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고, 이런 강한 캐릭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일조한다. 문화평론가 정석희 씨는 “작가들이 스토리를 창작하는 데 있어 한계에 부닥치면서 극단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내세우는 면도 있다”면서도 “드라마가 일부나마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때 실제로 우리 주변 곳곳에 드라마에서처럼 숨어서 악행을 저지르는 소시오패스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시오패스가 늘어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페리 교수는 레온이 소시오패스가 된 계기를 추적하며 그의 어머니가 레온이 1세도 되기 전 레온을 어두운 아파트에 혼자 방치한 채 산책을 나갔던 점을 발견했다. 레온은 울며 몇 차례 엄마를 찾았지만 어떤 감정을 표현해도 아무런 반응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방치가 이어지면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을 받거나 비난을 받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는 뇌 영역이 발달하는 데 필요한 자극을 받지 못하면서 소시오패스로 성장하게 됐다. 페리는 “1세 이전의 양육 태도가 소시오패스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좌우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상당수 정신과 전문의들은 소시오패스가 형성되는 데 선천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들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심을 키울 수 있는 의학적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을 “이건 좋은 행동이고, 이건 나쁜 행동”이라는 식의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학습시킨다면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석한 정신과 전문의는 “소시오패스는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로 끌려서 병원에 와도 변화에 대한 동기가 부족해 치료가 매우 어렵다”라며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잘 간파한 뒤 이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게끔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 거짓말-동정심 유발 세번 넘어가면 일단 의심 ▼ 소시오패스 어떻게 알 수 있나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한모 씨(25)는 팀장만 보면 신경이 곤두선다. 팀장 김모 씨(37)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씨를 타박한다. 작은 실수를 해도 동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심한 욕설과 함께 “짐을 싸서 나가라” “팀에 쓸데없는 놈”이라는 등의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김 씨는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 다른 ‘가면’을 쓰기도 한다. 신입사원에게는 천사 같은 얼굴로 “어디 불편한 일은 없느냐?” “힘든 일 있으면 털어 놓으라”며 자상하게 대한다. 신입사원의 직무만족도 평가가 팀장의 근무평정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인사실장이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 한 씨에게 ‘무능하다’고 욕설을 퍼붓다가도 인사담당 간부에게는 “이렇게 훌륭한 사원들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아부하기 바쁘다. 가식적인 웃음과 말투에 한 씨는 소름이 끼친다.
김 팀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위를 악용하는 ‘지능형 소시오패스’다. 이처럼 ‘소시오패스’는 일상생활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상사부터 가까운 이웃까지 교묘하게 숨어 있다. 우리 주변에 숨은 소시오패스에 대처할 방법은 없는 걸까.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 씨는 ‘일상에서 소시오패스에 대처하는 13가지 규칙’을 제안했다.
스타우트 씨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를 알기 위해선 ‘죄책감이나 양심이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이 세 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 거짓말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때부터 당신을 만만하게 본 소시오패스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
소시오패스는 우리를 조종하기 위해 아첨으로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그의 칭찬이 진심인지를 의심해야 한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범죄나 악행, 거짓말을 들키면 동정심에 호소해 범죄를 숨기려 한다. ‘악어의 눈물’에 속지 말고, 그의 범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대비하라고 스타우트 씨는 조언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소시오패스 중 상당수가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철저히 평범하게 위장하고 있어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각 직장이나 지역구마다 심리상담사를 배치해 소시오패스를 발견했을 때 전문상담사에게 연결해주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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