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킹맘’ 김모 씨(34)는 이달 초 33개월 된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보낸 ‘여름 수상캠프 동의서’를 받았다. 경기 용인시의 한 워터파크로 놀러가는 일정이었다. 맞벌이 부부인 김 씨는 평소 딸과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었던지라 흔쾌히 서명했다. 하지만 지난주 내린 장마로 일정이 연기된 사이 충남 태안군 안면도 해병대 캠프에서 벌어진 사고 소식을 접한 뒤 딸의 캠프 참가 취소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2.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박모 씨(45·여)는 이번 방학에 딸이 다니는 학원 수를 줄여서라도 자기주도학습 기숙캠프에 보낼 계획이었으나 사설 해병대 사고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주변 엄마들이 자녀를 국제중에 보내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니 보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고교생 5명이 18일 안면도 사설 해병대 캠프에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숨진 소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은 ‘캠프 딜레마’에 빠졌다. 여름방학 기간인 7, 8월은 자녀들을 수상 캠프나 극기체험 캠프, 해외영어 캠프 등에 보낼 최적의 시기지만 학부모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학부모들은 ‘혹시나 내 아이만 보내지 않으면 단체생활에서 왕따가 되거나 학교에 밉보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쉽사리 캠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캠프 참가 경력을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국제중이나 특목고 진학을 위한 스펙 중 하나로 여기는 풍토도 부모들의 캠프 딜레마를 가중시킨다.
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맘스홀릭 베이비’와 ‘레몬테라스’에는 해병대 캠프 사고 이후 자녀를 각종 여름 캠프에 보내야 하는지를 묻는 글이 수십 개 쏟아졌다. “내 자식은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강경한 글도 있었지만 혹시나 내 아이만 캠프에 보내지 않으면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다수였다. 자녀가 가기로 예정된 캠프의 이름을 대고 안전한지를 묻는 글들도 있었다. 맘스홀릭 베이비 ID ‘난3×××××’는 “아이가 방학 때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집에 있는 것보다 여름 수상 캠프에 보내야겠지만 사고 뉴스를 보면 도무지 보낼 수가 없다. 보내자니 불안하고 안 보내자니 내 아이만 뒤처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적었다.
부모들의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캠프들의 안전성을 담보할 만한 기준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청소년 정책을 주관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은 캠프 프로그램의 목적, 지도력, 활동환경 등 14개 기준을 심사해 ‘청소년수련활동인증’을 사설 청소년 캠프에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업체가 인증 없이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청소년수련활동인증을 받은 기관은 7월 현재 323곳이지만 대부분 수련관·수련원(148곳)과 문화의 집(72곳)이다.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사설 여름 캠프업체 등은 18곳에 불과하다.
○ 인증제는 역할 못하고, 컨트롤타워도 없고
동아일보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극기체험 캠프와 래프팅 수상 캠프, 국토대장정 등 여름 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업체 15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청소년수련활동인증 여부를 조사한 결과 13곳이 인증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안 되면 되게 하라’ ‘인간개조 프로젝트’ 등의 구호와 진흙탕에 구르는 학생 사진 등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유명 스포츠 스타를 홍보이사로 내세운 한 업체는 “정부 인증은 별로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캠프업체가 안 받는다”면서 “안전은 걱정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안전요원들은 초보자가 부지기수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들에 ‘캠프’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래프팅 또는 해변캠프 업체 구인광고에는 대부분 “초보자도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기자가 강원도의 한 래프팅업체에 안전요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전화를 걸자 “몇 살이냐, 수영할 줄 아느냐”라고만 물었을 뿐이다. 기자가 “래프팅 관련 자격증이 없는데 괜찮냐”고 묻자 “와서 배우면 된다. 상관없다”고 답했다.
청소년 캠프 정책을 주관하고 관리할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도 문제점이다. 청소년수련활동은 여성부가 주무 부서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 안전행정부도 관여하고 있다. 태안 해병대 캠프를 운영한 여행업체는 문체부 소관이다. 수학여행도 대부분 여행업체의 주관으로 이뤄진다. 여성부 관계자는 “부처별로 중복되는 부분은 법적, 행정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관계자는 “모든 캠프가 인증을 받도록 하면 좋겠지만 당장 인증을 필수사항으로 강제하면 종교기관에서 하는 여름수련회도 인증을 받지 못해 개최할 수 없게 된다”며 “인증 절차를 간소화해 점진적으로 인증 업체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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