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은행 지점장이 횡령한 예금을 대신 돌려달라’며 외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겨 470억 원을 돌려받게 됐다.
2005년 경기 용인시의 유명 골프장 소유주인 60대의 재일교포 사업가 A 씨는 VIP를 담당하는 외환은행 지점장 정모 씨(50)를 소개받았다. A 씨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정 씨의 말에 80억 원을 맡겼다. 일본에서도 게임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고 국내에서도 회원 수 2000명, 연매출 180억 원의 골프장을 운영하며 ‘자린고비’처럼 돈을 모아왔던 터라 그 정도 투자금은 있었다.
처음엔 수익이 좋았다. 게다가 한글을 잘 못 읽는 A 씨를 위해 정 씨는 각종 은행 업무를 발 벗고 도와줬다. 거래가 지속되면서 둘 사이는 막역해졌다. 정 씨를 신뢰한 A 씨는 2010년 2월까지 모두 47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정 씨 지점에 자신은 물론이고 부인과 자식들 명의의 예금으로 넣고 투자를 위임했다. 통장과 인감도장까지 쥐여줬다.
수백억 원이 든 예금통장을 주무르던 지점장 정 씨는 이 돈을 자신의 실적을 올리는 데 쓰기 시작했다. 정 씨를 믿은 A 씨가 특별히 잔액을 캐묻지 않았고 거래명세 보고서만 작성해 보내주면 됐기 때문이었다. 정 씨는 2년간 46회에 걸쳐 예금을 빼내 다른 기업에 대출했다. 대신 그 회사의 모든 거래를 자신이 근무하는 지점으로 끌어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불어닥친 금융위기 때문에 돈을 빌려준 기업들이 재정 악화로 줄줄이 파산하면서 A 씨의 470억 원도 모두 날아갔다. 배신당한 A 씨는 정 씨를 고소했고 정 씨는 올해 2월 대법원에서 횡령 혐의로 징역 5년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점장 정 씨에게 속아 470억 원의 돈을 날린 A 씨는 2011년 은행에 ‘지점장을 대신해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은행 측은 “돈을 맡겨놓고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건 고객의 책임”이라면서 “은행 예금거래 약관을 보면 은행의 ‘고의적인’ 과실이 아니면 예금인출 사무처리가 잘못돼도 면책된다고 써있다”고 주장했다.
2년 5개월간 진행돼 온 소송에서 재판부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부장판사 고영구)는 “비록 고객이 투자 권한을 맡기고 제대로 거래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어도 직원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한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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