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만원짜리 방콕관광 ‘47만원 배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4일 03시 00분


■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외여행 상품

“해외캠프 떠나요” 방학 맞아 해외로 해외로 청소년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23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떠나려는 인파가 몰렸다. 해외 캠프를 떠나려는 학생들이 단체로 모자를 쓰고 짐을 든 채 출국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해외캠프 떠나요” 방학 맞아 해외로 해외로 청소년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23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떠나려는 인파가 몰렸다. 해외 캠프를 떠나려는 학생들이 단체로 모자를 쓰고 짐을 든 채 출국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7월 11박 12일짜리 유럽 6개국 패키지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노모 씨(54)와 가족 일행은 가이드에게서 꺼림칙한 얘기를 들었다. 상품을 계약한 여행사에서 알려준 일정 대신 가이드 자신이 준비한 대로 움직이겠다는 통보였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탈리아 피렌체 베키오 다리, 영국 런던 타워브리지,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 등은 버스 창밖으로만 바라봤다. 가이드가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아 1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수박 겉핥기로 넘어간 관광지 대신에 이미 5곳이나 있던 쇼핑 일정이 두 곳이나 추가됐다.

노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따졌지만 여행사는 “일정 변경은 현지 가이드의 몫이라 우리와 상관없다”고 발뺌했다.

○ 30만 원대 방콕 3박 4일 상품의 비밀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소비자원은 36개 여행사의 중국과 동남아 지역 패키지 상품 200개를 대상으로 벌인 첫 실태조사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특히 저가(低價) 패키지 상품에서 배(상품 가격)보다 배꼽(추가 비용)이 큰 경우가 많다는 점이 드러났다. 30만 원 미만 여행상품의 경우 세금, 가이드 팁, 선택 관광 명목으로 들어간 평균 추가비용이 상품 가격의 86.4%나 됐다.

김모 씨는 올해 초 34만9000원짜리 태국 방콕 3박 4일 패키지 상품을 구매했다. 그는 상품 가격 외에 추가로 유류할증료(21만 원)와 선택 관광 비용(22만 원), 가이드 팁(4만6000원) 등 47만6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여행에 든 총 경비(82만5000원)를 따지면 일반 상품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품 가격은 사실상 항공료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런 경우 나머지 식비와 숙박요금은 현지 가이드가 추가로 거둬들인 돈으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저가 여행상품에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여행업계에 오랫동안 굳어진 관행 때문이다. 많은 고객을 모집하려 싼 가격을 미끼로 내세운 여행사는 현지 여행업자(랜드사)에 고객을 떠넘긴다. 랜드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쇼핑이나 선택 관광을 통해 수익을 남길 수밖에 없다. 한국관광공사는 “무조건 싸다는 이유로 여행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표시된 가격만으로 여행상품을 선택하지 말고 추가 비용과 숙박, 쇼핑 등 주요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 이동 시간이 여행의 절반 차지


겉 다르고 속 다른 패키지여행의 피해 사례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패키지 상품의 일정 변경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0%였다. ‘선택 관광’으로 고지된 부분이 사실상 선택이 아닌 ‘의무 관광’이었다는 응답도 많았다. 지난해 베트남 북부 여행상품을 구입한 이모 씨는 선택 관광 항목인 할롱베이 스피드보트를 억지로 타야 했다. 게다가 요금은 처음에 안내받은 금액의 2배나 됐다.

기본 관광 시간에 비해 이동과 대기, 선택 관광, 쇼핑, 식사 시간이 지나치게 긴 경우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 여행사의 34만9000원짜리 하노이 3박 5일 패키지 상품은 총 여행시간(35시간 20분) 가운데 이동 및 대기 시간이 50.2%, 선택 관광이 14.2%, 쇼핑이 9.2%, 식사 시간이 10.4%를 차지했다. 반면 기본 관광 시간은 전체의 16.0%에 그쳤다.

문제는 여행사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법체계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일본에는 여행업법, 중국에는 여행사 조례라는 독자적인 여행 관련법이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여행 관련 내용이 4개의 별도 법률에 분산돼 있다”며 “그러다 보니 저가 관광이나 질 낮은 여행 서비스를 규제할 법조항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염희진·류원식 기자 salthj@donga.com
#방콕관광#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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