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남자에 “NO”라고 해야 처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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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해설서 펴냈지만… 여전히 애매한 경범죄법

또각또각, 뚜걱뚜걱. 가로등도 희미한 밤의 골목길. 인적 뜸한 거리에 여성의 하이힐 소리와 그를 뒤따르는 한 남자의 구둣발 소리만 또렷하다. 여성은 불안하다. 걸음을 빨리하지만 남자와 거리가 벌어지지 않는 것 같다. ‘멈출까, 더 빨리 갈까.’ 멈추자니 남자가 옆까지 다가오는 게 무섭고, 더 빨리 가자니 남자를 오히려 자극할 것만 같다. ‘따라오지 말라고 말할까.’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만한 상황이다. 25일 경찰청이 발간한 ‘경범죄 처벌법 해설서’에 따르면 이 남자는 경범죄 처벌법상의 ‘지속적 괴롭힘’(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설서는 “스토커 처벌은 피해자가 전화나 구두, 서면 등으로 거절의사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사례의 경우 여성이 명시적으로 “따라오지 말라”고 한 뒤에도 남자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따라가야 스토킹을 적용할 수 있다.

지속적 괴롭힘 대신 경범죄 처벌법상 “정당한 이유 없이 뒤따라가 불안하게 한 것”(불안감 조성)에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가 “산책하러 나왔는데, 여자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주장한다면 처벌이 쉽지 않다. 해설서에는 “불안감 등 주관적인 감정에 대한 판단은 평균의 일반인을 기준으로 한다”고 애매하게 서술돼 있다. 결국 경범죄 처벌법으로 ‘골목길 안심 통행권’을 보장받기는 어려운 셈이다.

경범죄 처벌법이 1954년 제정 이후 10차례나 개정돼 왔지만 여전히 불분명한 조항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일선 경찰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25일 ‘경범죄 처벌법 해설서’를 발간했지만 이 역시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

‘장난 전화’ 조항은 피해자가 거절하는데도 만나 달라는 내용의 문자나 전화를 반복하는 행위를 처벌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해설서에는 “1, 2회는 규제할 수 없다. 수십 차례는 처벌할 수 있다. 탤런트에게 6차례 밤 10시 이후 전화해 ‘사랑하는데 만나 달라’는 전화를 걸어 괴롭히면 처벌 대상이다”라고만 나와 있다.

심야의 케이블 채널 패션쇼에서 가슴이 완전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 모델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반 여성이 이 옷을 사서 거리에서 입으면 경범죄 처벌법 상 ‘과다 노출’로 처벌받는다. 거리에서 가슴을 완전히 노출하는 옷차림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해수욕장 수영장 등에서 상의를 탈의한 이른바 ‘토플리스 차림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해설서는 “과다 노출의 판단은 사회 통념, 행위의 장소나 주변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장진영 변호사(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는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큰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걸인이 공공장소에서 통행을 방해하면 처벌하는 조항도 논란이 인다. 해설서는 “역 계단의 한 귀퉁이에 바구니만 놓은 채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은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통행 방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장 변호사는 “경범죄 처벌법은 형법의 일종인데도 범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후진적인 법률”이라며 “대부분의 일반인을 쉽게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스토킹#경범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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