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대로 투신한 남성연대 대표… 아무도 안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7일 03시 00분


성재기씨 마포대교서 뛰어내려 실종… 헬기-보트 띄워 수색… 생사 확인안돼
경찰, 현장에 있던 직원 등 4명 조사 “사망 확인땐 자살방조죄 적용 가능”
KBS 카메라 투신장면 촬영도 논란, KBS측 “사전-사후 두차례 구조신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26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하기 직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당시 현장을 지나던 시민이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성 대표가 마포대교 바깥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고 오른쪽에는 KBS 카메라 기자가 서 있
다. 이 시민은 “KBS 기자가 가만히 카메라를 들고 있길래 나는 둘이 약속하에 뭔가 프로그램 같은 걸 찍는 줄 알았
다. 그래서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블로그 화면 캡처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26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하기 직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당시 현장을 지나던 시민이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성 대표가 마포대교 바깥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고 오른쪽에는 KBS 카메라 기자가 서 있 다. 이 시민은 “KBS 기자가 가만히 카메라를 들고 있길래 나는 둘이 약속하에 뭔가 프로그램 같은 걸 찍는 줄 알았 다. 그래서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블로그 화면 캡처
25일 한강에 투신하겠다고 예고한 남성인권보호단체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46)가 26일 오후 3시 19분경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성 대표는 투신 전날 “자살할 의도는 없으며 수영해 나오겠다”고 밝혔으나 26일 투신 직후 수심 8m 물속으로 사라졌고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성 대표는 이날 오전 마포대교 주변 상황과 수심을 파악하는 등 안전에 대비했으며 투신 직전에는 바지 밑단을 끈으로 묶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 대표의 트위터에는 이날 오후 3시 15분경 ‘정말 부끄러운 짓입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반성하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투신 직전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에서 성 대표는 마포대교 남단 난간 바깥쪽에 서 있었고 두 손이 난간에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사진은 남성연대 관계자가 촬영해 트위터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영등포소방서는 KBS 기자로부터 투신 신고를 받고 소방관 70여 명과 구급차 및 지휘차 등 차량 10여 대, 소방헬기까지 출동시켜 오후 10시까지 6시간 반 동안 수색 작업을 했지만 성 대표를 찾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최근까지 이어진 장마로 한강 수위가 높아졌고 물살까지 빨라 수색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성 대표는 앞서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여성단체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데 남성단체는 아무 후원이 없다. 남성연대에 1억 원을 빌려 달라”며 “26일 오후 7시 전 동료가 인증촬영을 하는 가운데 24개 한강다리 중 한 곳에서 투신할 것”이라고 공표했었다. 성 대표가 투신할 당시 다리 위에는 KBS 카메라기자가 있었다. 한 시민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에는 KBS 기자가 다리 난간 밖에 서 있는 성 대표 쪽으로 방송용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누리꾼들은 ‘카메라 들고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며 비난했다.

KBS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KBS 취재진은 사전 사후 두 차례나 구조신고를 했으며 구조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민은 본보와 통화에서 “지나가다 성재기 씨를 봤는데 왼쪽에 캠코더 같은 걸 든 사람이 2명, 오른쪽에 KBS 카메라를 든 남자가 있었다. 성 씨가 난간을 넘어가기까지 약 30초, 그 뒤 성 씨가 뛰어내리기까지 10초 정도 더 걸렸는데 그때까지 말리거나 하는 건 없었다. 성 씨가 ‘감사합니다’라며 뛰어내리자 KBS 카메라 기자가 난간으로 달려가면서 소리를 질렀고, 뒤에 있던 사람을 불렀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성 대표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현장에 있었던 남성연대 관계자들에 대해 자살방조죄(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 자살방조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관계처럼 자살을 막아야 할 사이여야 한다”며 “촬영기자가 성 대표와 그런 관계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도의적 비난 가능성은 있지만 촬영기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은 어렵다”고 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남성연대 사무처장 한승오 씨(35) 등 4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 중이다. 당시 한강 둔치에 있던 남성연대 지지자 박모 씨(28)는 수상 인명구조자격증 소지자다. 박 씨는 경찰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었으나 너무 갑자기 떨어져 손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성 대표는 앞서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죽으려고 뛰는 게 아니다. 헤엄쳐 나올 자신이 있다”며 “우리 남성연대의 외로움을 알리고 관심(후원)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날 트위터에 ‘내일 저녁 7시 남성연대 사무처 불고기 파티를 예정대로 진행한다. 왜 다들 투신하면 내가 죽을 거라 생각하느냐. 나는 거뜬히 살 자신이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남성연대는 남성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2011년 11월 1일 출범한 국내 첫 남성단체다. 2008년 1월 온라인 모임을 시작해 2011년 3월 정식 시민단체로 인정받은 뒤 사무실을 열고 상근직원 3명을 뒀다. 성 대표는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조그만 자영업을 하다 1999년 군 가산점이 폐지된 것을 계기로 남성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동일·김수연 기자 dong@donga.com

신지후 인턴기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한강투신#성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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