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의지 14세 여중생 “도와주세요” 한마디에…
넉달 넘게 업어나른 서울 응봉파출소 직원들
‘휴, 어떡하지….’ 한숨이 나왔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혼자 휠체어를 타고 왔지만 거기까지였다. 경사가 45도 정도로 가파른 계단이 있는 언덕이 앞에 버티고 있었다.
김서연(가명·14) 양은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좀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에 의지한 두 다리는 태어날 때부터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김 양은 선천성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언제나 김 양을 업고 집에 데려오던 어머니는 3월 11일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갔다. 하루하루 근근이 일을 해 식구를 부양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대드는 오빠도 김 양을 돌봐주지 못했다. 김 양은 학교에 가기 위해 사투했다. 난간을 붙들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한 계단씩 밀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받쳐주다 온통 땀에 젖었다. 내려갈 때는 어찌어찌 해냈지만 오르막에서까지 할머니에게 기댈 순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해서 언덕을 올라가길 사흘째 되던 3월 14일,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탔다.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그때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나타났다. “저기요…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경찰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걱정 말라”며 김 양의 등을 토닥였다. 서울 성동구 응봉파출소 경찰들과 김 양의 첫 만남이었다. 경찰 한 명은 김 양을 등에 업고 한 명은 휠체어를 들었다. 그러곤 10여 분 거리인 김 양의 다세대주택까지 데려다줬다.
이날부터 소녀와 경찰은 매일 하굣길 친구가 됐다. 처음 김 양을 업어 준 경찰관은 파출소 전화번호와 명함을 건네주며 언제든 전화하라고 일러줬다. 그때부터 넉 달 넘게 김 양은 매일같이 수업을 마치면 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응봉파출소까지 혼자 휠체어를 밀고 온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경찰 두 명이 나가 한 명은 김 양을 등에 업고 다른 한 명은 휠체어를 들어준다. 파출소 주간 당직 팀 직원들이 매일같이 돌아가며 김 양의 하굣길을 도와주고 있다.
파출소를 나서 언덕길 10여 분을 지나 다세대주택 층계를 다 오르면 허리가 뻐근하고 온몸이 땀에 젖지만 경찰들은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김준영 경사(40)는 김 양을 업고 언덕을 오를 때마다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고 했다. 김 경사의 일곱 살 딸도 3급 장애를 갖고 있다.
김 양의 다세대주택에 오면 경찰들은 항상 2층에 내려준다. 김 양의 집은 3층인데 왜 그럴까. 양창복 응봉파출소장(51)은 “일부러라도 근육을 쓰지 않으면 영영 못 걸을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생각”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 양이 난간을 붙들고 혼자 마지막 12개의 계단을 오를 때까지 경찰과 할머니는 옆에서 지켜본다.
김 양의 할머니 배외순 씨(79)는 “아이가 엄마 없이 눈보라 치는 길을 다녀야 할 겨울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활동보조 지원의 대부분은 장애 등급 2급부터 적용된다. 원래 지체장애 1급으로 등록돼 있던 김 양은 지체장애에서 뇌병변 장애로 분류가 바뀌면서 2011년 6월 장애등급이 3급으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이 김 양을 업고 언덕을 오르는 사진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 서울지방경찰청 페이지에 올라 누리꾼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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