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내 얘기가 될지 모르잖아요. 우리끼린 사고 소식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불문율입니다.”
31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만난 중국동포 정용준 씨(61)는 눈시울을 붉히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날 서울 강서구 방화대교 인근 고가도로 공사 현장에서 중국동포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쳤다는 사고 소식이 뇌리에 계속 맴도는 듯했다. 옆에 있던 중국동포들은 기자가 다가가자 손사래만 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국동포 노동자들이 최근 잇따르는 산업재해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방화동 사고 보름 전인 7월 15일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에서도 사망자 7명 중 3명이 중국동포였다. 5월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안 조선소에선 갑자기 떨어진 10t짜리 선박구조물에 깔려 중국동포 1명이 사망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6월 30일 현재 국내 취업 외국인 53만8477명 중 42.6%(22만9607명)가 중국동포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단순기능직 종사자는 48만7879명(90.6%)으로 중국동포의 상당수가 건설업 제조업 등 이른바 ‘3D업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장에서는 중국동포 노동자들이 한국말을 모두 알아듣는다고 여기고 각종 지시를 내리지만 실제로는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중국동포 김민웅 씨(59)는 “작업현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지시를 할 때마다 몰라도 이해하는 척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 푼이 절박한 중국동포는 사업자가 안전설비나 별도의 안전교육 없이 바로 위험한 작업에 투입시켜도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이 기피하는 3D업종의 고된 일을 도맡아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다치면 ‘용도 폐기’되는 게 중국동포의 현실이다. 중국동포 김태원 씨(61)는 지난해 1월 평택의 한 고춧가루 공장에 취직해 일하다가 일주일 만에 감기가 걸렸다. 김 씨가 기침을 하는 걸 본 업체 사장은 “감기가 옮는다”며 일을 그만두라고 종용했다. 김 씨는 “일할 수 있다”고 항변했지만 사장은 막무가내로 김 씨를 평택역에 버리듯이 내려놓았다. 일주일 동안 일한 임금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이후 김 씨는 경기 남양주의 참나무 장작 제조공장에서 일했지만 한 달 반 만에 오른손 검지 끝이 베이는 사고를 당했다. 김 씨는 “고용주들은 작업 날짜 맞추는 것에만 급급할 뿐이다. 안전조치에 대해 신경 쓰는 현장은 본 적이 없다”며 “아침에 멀쩡히 걸어서 출근했다가 절뚝거리거나 다친 손을 문지르며 퇴근하는 게 우리 중국동포”라며 울분을 토했다.
근로복지공단 박은주 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11년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외국인 노동자 6603명 가운데 3525명이 중국동포였다. 2007년에는 산재 인정을 받은 외국인 노동자 3989명 가운데 중국동포는 715명이었다. 산재를 당하는 중국동포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런 수치는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전체 중국동포 노동자의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동포는 사업장에서 다쳐도 산재를 신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노동자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사업장 측이 돈이 급하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중국동포의 약점을 노려 합의를 종용할 때가 많다. 특히 건설업계에선 산재 처리 건수가 많으면 추후 사업을 수주하는 데 불리해질 수 있다고 여겨 어지간한 사고에 대해선 합의로 무마하는 일이 많다.
한 중국동포는 “팔이 부러지거나 손가락이 잘려도 치료비와 함께 합의금 150만 원 정도 받는 게 전부”라며 “산재를 신청하면 고용주가 싫어하고 일이 끊길 수 있어 우리도 웬만한 건 참고 넘긴다”고 말했다. 산재를 당한 근로자가 불법체류자라면 더욱 신고하기가 어렵다. 불법체류자도 법적으로 산재의 혜택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후 강제 출국되면 일을 아예 할 수 없어 스스로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불법체류자는 다른 합법체류자나 한국인의 이름을 빌려 일할 때가 많은데 이럴 경우엔 산재 신청을 하더라도 치료비 외에 실업급여나 장애수당 등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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