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 4000원 전자카드 눈칫밥 싫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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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이 괴로운 저소득층 아이들

경기 안양시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박모 양(11)은 요즘 어머니가 출근하면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다. 한낮에는 PC방을 전전하다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다. 박 양은 “딱히 할 일도 없어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방학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아이들이 많이 있다. 끼니를 걱정하고 소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보육원생들과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힘겨운 ‘여름방학 나기’ 현장을 살펴봤다.

○ 학교 급식 없어 배고픈 아이들

3일 낮 서울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방학이 되면 학교 급식이 중단되기 때문에 하루 세 끼를 모두 보육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날 메뉴는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하지만 항상 이런 메뉴를 주기는 어렵다.

시설아동의 식대가 아동복지법이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생계비 기준에 따라 지원돼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동양육시설 급식단가는 한 끼 1920원인데, 이나마도 올해 7월부터 400원가량 대폭 오른 것이다. 부청하 상록보육원장은 “지역아동센터(3000∼4000원)나 학교 무상급식(2700∼3500원)보다 현저하게 낮아 후원자들의 도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은 그래도 나은 편. 경북의 한 보육원 원장은 “후원금이 거의 없어 식단을 짤 때마다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시설 밖의 아이들도 방학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올해 194억1700만 원을 투입해 시내 결식 우려 아동 5만2000여 명에게 급식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동들도 눈칫밥을 피할 순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최모 군(서울 관악구 봉천동)은 방학 때는 급식 전자카드인 ‘꿈나무카드’(한 끼 4000원)로 식사를 한다. 서울 시내 꿈나무카드 가맹점 6853개소는 편의점이 5156개소로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분식점이나 중식당이다. 예산에 맞춰 먹을 수 있는 것은 김밥과 라면 정도. 최 군은 “사회복지관 등에 가서 급식을 받을 수도 있지만 창피해 대충 때운다”며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 캠프·학원은 사치…빈둥대는 아이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중학교 1학년 김모 군(13)은 “학원이나 방학 프로그램은 돈이 없어 신청하지 못했고 하루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한다”며 “개학하면 친구들보다 뒤처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방학은 학습 공백기다. 지방자치단체가 위탁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옛 공부방)는 아침부터 밀려드는 아이들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제대로 돌보기는 어렵다. 보통 교사 2, 3명이 수십 명의 아이를 맡다 보니 개인별 맞춤 지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성태숙 구로파랑새지역아동센터 교사는 “방학 때 따로 특별활동비 등 지원이 없어 후원을 받거나 무료 프로그램에 당첨되지 않으면 캠프나 체험교육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방학 때 방치될 수 있는 결식 우려 아동은 서울에만 5만 명이 넘지만 서울 시내 420여 개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만800여 명에 불과하다.

부청하 원장은 “방학 때면 봉사활동 점수 때문에 1회성 단기봉사자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아이들이 붕 뜬 상태가 되곤 한다”며 지속적인 사랑이 아쉽다고 말했다. 노은경 서울아동복지협회 사무국장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방학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위화감이 심해져 삶의 의욕과 목표를 잃고 방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는 한국아동복지협회 02-790-0818∼9, 지역아동센터중앙지원단 02-365-1264.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저소득층#전자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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