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섬을 사랑하다 섬이 되어버린 섬마을 선생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8일 03시 00분


존 맥클린톡 씨가 지난달 22일 오전 금오도에 있는 여남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과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GS칼텍스 제공
존 맥클린톡 씨가 지난달 22일 오전 금오도에 있는 여남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과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GS칼텍스 제공
《 전남 여수시 돌산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말로만 듣던 금오도가 눈에 들어왔다. 뭍에선 만나기 힘든 매서운 바닷바람에 코끝이 금세 얼얼해졌다. 하지만 푸른 바다의 청량함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배에서 내려 겨울 바다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지금쯤 고향은 한여름이겠지. 그런데 난 무엇을 찾아 여기에 온 걸까. 과연 내가 이 섬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 2008년 2월.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 줄은, 그리고 이 섬을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은. 》

○ 그 섬에는 바보가 산다

“머슴도 상머슴이죠. 한국 사람들이 바보로 알고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외국인 강사들은 계약된 시간만 근무하면 추가 수업을 안 하는데 거절을 못하니까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해 달라고 하면 또 가서 하고…. 퇴근 후에도 거의 매일 놀러 오는 아이들과 놀아야 하니 개인 시간은 없다고 봐야죠.”

섬마을 사람들 눈에 비친 그는 자기 잇속이라고는 전혀 챙길 줄 모르는 ‘바보’다.

“얼마 전까지는 섬에서 출퇴근하며 군복무를 하던 옛 제자를 집에 데리고 살았어요. 처음엔 며칠만 머무를 줄 알고 흔쾌히 승낙했다는데 그렇게 오래 머물 줄 몰랐던 거죠. 결국 2년 가까이 아침저녁으로 밥 챙겨주고 방청소를 해주면서 살았다니까요.”

섬의 선착장에서 만난 마을사람들을 일일이 집에 데려다 주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의 검은색 코란도 승합차는 섬 아이들의 ‘콜택시’다. 학교 수업이 끝났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박진섭 목사(48·여수 대신교회)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말이었다. 박 목사는 ‘도서지역 원어민 영어교사 프로그램’에서 일할 원어민 강사를 구하던 중이었다. 순천의 한 교회 영어예배 시간에 만난 선한 인상의 외국인에게 박 목사가 “혹시 괜찮은 강사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자 “내가 가겠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섬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하는 프로그램이라 어지간한 외국인 강사들은 쉽게 나서지 않는데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 직접 가겠다고 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금오도에 살겠다고 했다. 한국 교사들도 ‘도서지역 근무 가산점’ 때문이 아니라면 잘 지원하지 않는 곳이다. 식빵 하나를 사려고 해도 배를 타고 여수에 나가야 하는 외딴섬이다. 주민은 1500여 명이다.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GS칼텍스가 여수에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마다했다. 부인도, 여자친구도 없다. 섬 근무를 자청한 건 외로움을 제대로 겪어보기로 작정이라도 했기 때문일까.

○ 섬마을 아이들과 특별한 5년


파란 눈의 외국인이 지난달 22일 금오도의 여남초등학교 3, 4학년 학생 10명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명함에는 ‘존 맥클린톡, 영어선생님’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존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금오도 개도 안도 등 5개 섬에 있는 초중고교를 하루에 한 번씩 방문해 영어를 가르친다.

존이 아이들에게 영어로 “지난 주말에 뭐 했니?”라고 물었다. 자신 있게 “아이 플레이 게임(I play game)”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우물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다.

“학생 중 40%는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조부모가 키우는 아이들입니다. 형편 때문에 영어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했는데 존이 온 뒤로 아이들이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박해권 교장)

존은 하늘색 담장이 금오도 앞바다와 잘 어울리는 집에서 산다. 오래된 농가여서 그런지 키가 큰 그가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는다. 혼자 사는 남자답지 않게 그의 집은 깔끔하다. 집은 거의 매일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TV를 보고, 요리를 해준다. 아이들의 생일 선물을 챙기는 일 역시 그의 몫이다. 그의 집 한쪽에 포장된 아이들 선물 1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선물 앞에 붙은 메모지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생일이 적혀 있었다.

존은 필통과 필기구를 직접 포장해 선물로 준다. 그러다 보니 반 아이들 대부분이 같은 필통을 갖고 다닐 정도다.

주말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뭍으로 떠났던 김주안(16·여수고 1학년) 조기호 군(16·여수공고 1학년)이 놀러왔다. 개도중 3학년 때 1년간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세 사람은 집 근처 직포해수욕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수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존 선생님 음식은 정말 맛있어요. 오랜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한 게 없어요. 처음부터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지냈거든요. 선생님 덕분에 영어에 관심이 생겼어요. 지금도 영어를 가장 좋아해요.”(김 군)

○ ‘스마일맨’에서 ‘하회탈’로

‘섬마을 선생님’ 존 맥클린톡 씨가 지난달 22일 그가 첫눈에 반했던 전남 여수시 금오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GS칼텍스 제공
‘섬마을 선생님’ 존 맥클린톡 씨가 지난달 22일 그가 첫눈에 반했던 전남 여수시 금오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GS칼텍스 제공
마흔 살의 존은 키 197cm에 마른 편이다. 언뜻 보면 영국 찰스 왕세자를 닮았다. 그의 고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하이델버그. 금오도와는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다.

늘 웃는 얼굴이다. 남아공 사람들은 그를 ‘스마일맨’이라고 불렀고 한국에선 ‘하회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학에서 산업심리학을 전공한 뒤 친구의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재무 업무를 담당했다. 성취감을 맛봤지만 오너 일가가 아니면 더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미련은 없었다. 그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가운데 순천의 한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사촌동생 조지의 전화를 받았다.

“형, 여기에 오지 않을래?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야. 아이들도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요하네스버그의 삶이 지겨워질 때쯤 받았던 사촌동생의 전화는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일이 매력적이었다.

2004년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순천에서 꼬박 4년 동안 영어학원 강사로 일했다. 정작 자신을 한국으로 불렀던 사촌동생은 1년 만에 계약을 마치고 남아공으로 돌아갔다. 대도시의 삶이 싫어 지구 반대편의 지방 도시로 왔지만 순천도 작은 도시는 아니었다. 다시 도시 생활에 지쳐갈 때쯤 박 목사를 만났다.

○ 아이들은 나를 붙잡는 ‘딱풀’

그의 생활에 대해 듣다 보면 ‘피곤할 텐데 왜 집에 와서까지 아이들과 어울려 놀까’ ‘다른 사람을 위해 살다 보면 자신이 고갈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아니 ‘혹시 남아공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피신한 것 아닌가’ ‘놀러 오는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늘 “다른 사람이 행복해야 너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가르침은 지금의 그를 설명하는 단서다. 섬에 살면서 불편할 때도 있고 낯선 환경과 문화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섬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마음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자연스럽게 섬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 사이 그에겐 300여 명의 제자가 생겼다. 그가 “나를 금오도에서 떠날 수 없게 붙잡는 ‘딱풀’ 같은 존재들”이라고 표현하는 아이들이다.

섬 아이들의 조부모를 보면서 더욱 헌신적으로 일하게 됐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져 섬으로 온 손자 손녀를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늘 그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며칠 전 여수에서 공부하던 한 학생이 주말에 할머니가 있는 섬으로 들어왔다. 존이 할머니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할머니가 내내 집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차를 보자마다 달려 나와 손자를 안았다. 그 장면을 본 그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 마지막 여름

존이 섬에서 5년을 보내는 사이 그와 함께 도서지역 원어민 교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다른 외국인 교사들은 1년 또는 2년마다 계약을 마치고 떠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존 한 명뿐이다.

사람들은 존이 홀로 금오도에 간다고 했을 때 3개월이 지나면 향수병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섬에 들어온 뒤로 지금껏 향수병에 걸리길 기다리고 있지만 소식이 없단다.

그런 존도 내년 2월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 섬을 떠날 계획이다. 어머니가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박 목사에게 이런 상황을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부모님이 연세가 많고,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내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 심장은 이 섬에 있을 거예요.”

존은 한국에 온 지 10년 가까이 되도록 제대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박 목사가 “올 여름방학이 네겐 마지막 기회야. 이번 여름엔 제발 여행도 좀 다녀”라고 말하자 그는 또 웃으며 말했다.

“이번 방학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여름이기도 해요. 그냥 아이들과 신나게 보낼 거예요.”

그는 정말 하늘이 보낸 바보 같다.

여수=박진우 기자 pjw@donga.com

#금오도#섬마을선생님#존 맥클린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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