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20일만에 ‘준비’ 경보 발령
예비전력 450만kW 밑으로 떨어져… 대형건물 강제절전이 블랙아웃 막아
당국 “14일까지가 고비… 냉방 자제를”… 양산-영동서 열사병으로 2명 사망
서울에 살고 있는 주부 정모 씨(32)는 8일 올여름 들어 처음 에어컨을 틀었다. 전기료를 아끼느라 평소 거의 에어컨을 이용하지 않는 정 씨지만 이날만은 견디지 못했다.
정 씨는 “장마 직후라 습도가 높고 기온까지 올라가다 보니 온 집안이 찜통 수준”이라며 “전기료를 절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전국에 기록적인 폭염이 덮치면서 8일 전력수요가 올여름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전력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전력거래소는 오후 1시 34분 예비전력량이 450만 kW 밑으로 떨어지자 전력수급 경보 ‘준비’를 발령했다. ‘준비’는 전력경보 5단계(준비, 관심, 주의, 경계, 심각) 중 첫 번째 단계로 전력수급 경보가 발령된 것은 지난달 19일 이후 20일 만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3시 전력수요량은 평균 7378만 kW로 지난달 19일 7211만 kW를 넘어서며 올여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날 전력거래소가 예상했던 이날 최대 전력수요량 7370만 kW를 초과한 것. 특히 이날 오후 1시 54분에는 순간 최대 전력수요가 여름철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8월 6일 7490만 kW에 육박하는 7431만 kW까지 치솟기도 했다.
잠잠했던 전력난이 다시 불거진 것은 긴 장마가 끝나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될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데 따른 것이다. 이날 울산의 낮 최고기온은 38.8도로 1932년부터 시작된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고기온이었다.
기상청이 울산 남구 고사동에 참고용으로 설치한 자동기상관측장비의 온도는 무려 40도까지 올랐으며 경북 울진 지역도 이날 37.8도까지 올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전력수요가 당초 예상을 넘어섰는데도 전력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은 것은 정부가 이달 5일부터 백화점 등 대형 건물의 전력소비를 의무적으로 3∼15% 줄이도록 하는 강도 높은 절전대책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이날 대형 건물에 대한 강제 절전조치와 공장 조업시간 조정 등 절전대책을 통해 줄인 전력수요량은 456만 kW에 이르렀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이날 최대 전력공급량이 7800만 kW 수준이었던 만큼 절전대책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전력수요가 공급량을 초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대규모 정전사태인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같은 절전대책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전력난이 더욱 악화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달 9∼14일이 전력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9일에는 시간당 최대 전력수요가 7420만 kW에 이르러 전력 경보 2단계인 ‘관심’이 발령될 것으로 내다봤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전력거래소에서 열린 여름철 전력수급 대응 종합점검회의에서 “다음 주 14일까지 전력수급 1차 고비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한편 찜통더위에 따른 사망자도 나왔다. 8일 오후 5시경 경남 양산시 평산동의 한 아파트 텃밭에서 일하던 박모 씨(65)가, 전날 오후 3시경 충북 영동군 심천면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던 김모 씨(54)가 열사병으로 숨졌다. 기상청은 이번 폭염이 14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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