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X파일의 X파일]‘썩지 않는 햄버거’ 때문에 민폐 끼친 이성환PD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햄버거 300개와 한달 씨름했더니 툭하면 방귀가…

‘먹거리 X파일’팀 이성환 PD의 캐비닛엔 지금도 미라처럼 말라버린 햄버거가 들어 있다. “3월 26일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구입한 햄버거예요. 아직도 썩지 않고 있네요.”

이 PD가 들려준 ‘착한 햄버거’(7월 19일 방영) 취재 뒷얘기의 키워드는 가스, 박스, 그리고 이영돈.

이 PD는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당기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그는 평생 먹을 햄버거를 다 샀다. “먹은 것, 사기만 한 것 다해서 200∼300개 될 거예요.”

취재 초기엔 후배 PD와 햄버거 한 개씩을 시켜 먹었다. 햄버거 가게만 하루에 네다섯 군데를 들르다 보니 금세 ‘피로감’이 왔다. 둘이서 하나 시켜 나눠 먹기 시작했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햄버거 반쪽씩을 들고 정담(사실은 취재 논의)을 나누는 광경은 ‘저 다정한 커플은 뭐지?’라고 묻는 듯한 주위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햄버거의 느끼함에 몽롱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아침, 후배 PD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취재지로 향하던 둘의 시선이 일순 같은 방향으로 쏠렸다. 두 시선의 연장선이 만난 곳은 아름다운 여성의 뒤태가 아닌 ‘김치찌개 전문점’ 간판 위. “비위 좀 맞추고 가자.” 점심부터 햄버거를 먹어야 하니 공깃밥은 안중 밖. 둘은 얼큰한 국물만 연방 입에 떠 넣고 나왔다.

“한창 (햄버거를) 먹을 땐 몸무게 2∼3kg이 순식간에 늘었어요. 시간은 가는데 ‘착한 버거’가 안 찾아지니 초조함에 비로소 살이 빠지더군요. 근데 사실 가장 괴로운 건… 가스였습니다.”

응? 축적된 햄버거는 이 PD 몸속에 가스를 가득 채웠다. “지방 취재를 가는 차 안에서, 첨엔 운전석에 앉은 후배 PD에게 ‘미안’ ‘미안’ 하며 ‘실례’를 했죠. 나중엔 귀찮으니까 그냥…. 후배가 알아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군요.”

햄버거 빵 사이에 들어가는 패티의 첨가물을 알아내기 위한 사투도 눈물겨웠다. 햄버거는 식품위생법상 즉석조리식품으로 분류돼 완제품에는 첨가물 표시 의무가 없다. “포장 박스를 찾으면 쉽게 풀리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죠. 근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한우버거 패티의 박스만 유독 보이지 않았다. 영업점의 철저한 ‘유통 관리’ 때문일까. 영업점 주변의 쓰레기통이란 쓰레기통은 샅샅이 뒤졌다. 후배 PD는 프랜차이즈 영업점 뒤쪽의 쓰레기통을 너무 열심히 뒤지다 구토까지 했다.

이 PD의 캐비닛에 있는 ‘햄버거 미라’ 얘기로 돌아가자. 지난달 초, 이 PD와 제작팀은 스튜디오 녹화에서 ‘석 달 넘게 놔둬도 썩지 않는 햄버거’를 예능적 요소를 가미해서 시청자들에게 보여 줄 방법을 고민했다. 문제의 햄버거는 방부제를 얼마나 넣었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미스터리였다. 머리를 쥐어뜯던 이 PD가 말했다. “상무님(진행자인 이영돈 채널A 상무)께… 먹여 보면… 어떨까?” 이 상무의 대본에 ‘먹어본다’를 살짝 적어 넣고 그 뒤에 ‘(상무님, 죄송합니다…)’를 붙였다.

드디어 녹화 시작. 완전히 말라 딱딱해진 햄버거 조각을 이 상무가 즉석에서 우직우직 쪼개더니 입안에 시원하게 털어 넣었다. ‘이거야!’ 이 PD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햄버거 미라’를 씹은 상무의 코멘트도 딱이었다. “음… 먹을 만한데요.” 이 PD는 녹화가 끝나기 전 조용히 회의실로 도주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먹거리#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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