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 ⑥]
연결망 과학으로 여자 이름 유행 분석…영희·현숙 거쳐 90년대엔 민지 전성시대
지난번 글에서 우리나라 ‘성씨’의 독특함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성씨 수가 아주 적고 김, 이, 박 등 일부 성씨에 몰리는 정도가 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성씨는 영어로 가족 이름(family name)이다. 말 그대로 한 가족을 다른 가족과 구별하는 호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 이런 ‘구별 짓기’가 쉽지 않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 열 명 중 두세 명은 김씨일 텐데, 이들이 다 한 가족이겠는가.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성씨뿐 아니라 본관을 사용하고, 같은 성씨 본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조상 가운데 한 분을 기준으로 삼아 ‘누구누구 파’ 같은 세부 분류를 사용한다. 세부정보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우리나라 성씨 분포 역시 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왜 하필 김 여사인가
유명한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 말고 다른 아인슈타인을 아는 분이 있는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찬가지로 뉴턴, 호킹, 오바마 등 우리가 아는 서양 유명인은 대부분 성씨만 얘기해도 누구를 일컫는지 알 수 있다(과학자 갈릴레오는 예외. 갈릴레오는 이름이고 성은 갈릴레이지만 책에서 대부분 갈릴레오라고 이름만 쓴다. 왜 그럴까. 궁금해도 잠깐만 기다리길).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김 여사’나 ‘김 박사’라고 하면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김 박사’가 ‘로보트 태권브이’를 만든 그 김 박사인지, 아니면 이 글을 쓰는 필자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요사이 독특한 운전 실력으로 유명인이 된 ‘김 여사’도 가장 흔한 성씨인 ‘김’을 붙여 그 대상을 불특정 다수로 만든 말이다. “오늘 출근길에 김 여사를 봤어”라는 문장에 ‘김’ 대신 우리나라 희귀 성씨를 하나 넣어보라. ‘김 여사’의 그 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사람들이 하필 ‘김’ 여사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편 이름(first name)은 어떨까. 펜으로 직접 작성하는 서류 가운데 기입 실수로 폐기되는 것을 모두 모아보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태어나고 결혼하고 이사하고 예금통장을 만드는 사람의 이름은 ‘홍길동’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 홍길동이 있다면 미국에는 ‘John Doe’가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영어 알파벳을 중학교에 입학하고서야 배웠다. 그때 처음 펼친 영어 교과서에도 존(John)은 수시로 등장했다. 이처럼 존, 피터 같은 이름은 상당히 흔하다. 필자가 직접 만난 물리학계 ‘피터’만도 언뜻 떠오르는 사람만 너덧 명이다. 반면 홍길동의 이름 ‘길동’은 만화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 아저씨 말고는 주위에서 본 적이 없다. 즉 외국의 경우 이름이 다양하지 않은 반면, 우리나라는 상당히 다양하다.
보통 우리는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할 때 성과 이름을 함께 사용한다. 그래서 성씨가 별로 다양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이름이 다양하고, 성씨가 다양한 서양에서는 이름이 다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도 물론 ‘영자’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겠지만, 과거에 비해 흔히 쓰는 이름은 아니다. 필자가 가진 전산화한 족보자료 10개를 이용해 여자 이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봤다. 아쉽게도 20세기 이전 족보자료에는 시집온 여자의 성과 본관은 기입돼 있지만, 이름이 적힌 경우가 드물어 1900년 이후로 기준을 삼았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에서 가장 유행한 상위 40개 여자 이름을 모으고, 이 이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평균을 내 그린 것이 ‘그래프1’이다.
이름의 반감기는 15년 정도
‘그래프1’에서 가로축은 해당 이름이 가장 유행한 시점을 0으로 놓고 구한 시간이다. 음 (-)의 값은 가장 크게 유행한 시점보다 전이라는 것을 뜻한다. 유행 50년 전쯤부터 그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다 10~20년 전부터 급격히 늘고, 가장 유행한 시점을 거쳐 30년 정도가 지난 뒤에도 상당수 사람이 그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프를 보면 유행하는 이름의 반감기(절반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는 15년 정도다. 보통 한 세대를 30년 정도로 생각하니, 이름 유행에 관여하는 시간의 척도(scale)는 반 세대인 셈이다.
필자가 ‘이름’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재밌어 하는 이유는 ‘이름’은 그 특성상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하지만, 동시에 너무 다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이름, 하지만 주변에 쓰는 사람이 없는 이름을 모두가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이름의 유행은 ‘그래프1’ 같은 모양을 갖게 된다.
‘그림1’은 과거 100년 정도의 기간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여자 이름 100개를 선택한 뒤 시간 흐름에 따라 각 이름의 사용 빈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리고, 이렇게 그린 그래프 모양이 가장 비슷한 이름끼리 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대상에 대해, 그 안의 구성 요소가 어떻게 상관관계를 맺는지 연구하는 방식은 요즘 많은 학문 분야에서 각광받는다. 연결망 과학(network science)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을 정도다.
다시 ‘그림1’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선으로 연결된 두 이름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정도로 유행했다고 보면 된다. 필자의 연구 그룹에 속한 대학원생인 이일구, 이미진이 그린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먼저 ‘영자’를 찾아보면 1950이라는 연도가 붙었는데, 이는 ‘영자’가 신생아 이름으로 가장 유행하던 시기가 1950년임을 의미한다. ‘영자의 전성시대’가 75년 개봉한 점을 감안하면, 영화 속 ‘영자’는 꽃다운 나이인 25세 정도였을 것이다. 50년대에 유행한 이름 ‘춘자’ ‘영자’ ‘옥순’ ‘복순’ ‘금순’은 60년대 들면서 ‘영희’ ‘정옥’ ‘혜숙’ 등에 자리를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은숙’ ‘현숙’ ‘경숙’ ‘미경’ 등 60년대 중·후반의 이름은 비슷한 연배여서인지 필자에게 무척 익숙하게 들린다. 이후 ‘은주’ ‘경미’ 등의 70년대와 ‘민정’ ‘수진’ ‘지은’ 등의 80년대를 지나면, 90년대에는 ‘민지’ ‘은지’ 전성시대가 온다.
성씨나 이름에 관한 연구를 사람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도 강연 중에 우리나라 성씨 분포의 독특함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청중 한 분이 강연 후 필자에게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응용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필자의 이런 이색연구가 지금이나 앞으로나 일말의 기술적인 응용 가능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도 필자는 이것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의미한다고 믿으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과학과 기술을 합해 ‘과학기술’이라 부른다. 필자는 과학은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과학은 기술이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위성항법장치(GPS)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기반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연구한 ‘이유’가 수십 년 뒤 GPS에 응용하기 위해서였을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과학자로 하여금 매일 설레는 가슴으로 연구실, 실험실로 향하게 만드는 것은 ‘이걸 연구해 나중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국민에겐 죄송하지만, ‘내가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상을 받기를 염원하는 마음은 필자도 어느 누구 못지않다. 그럼 왜 과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가 많은 과학자를 대신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냥 아침에 연구실, 실험실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레기 때문”이다.
돌림자 영향 받는 남자 이름
이 글에서 여자 이름만 다룬 이유는 사용한 자료가 10개 집안의 족보라 남자 이름은 소위 ‘돌림자’ 영향으로 우리나라 전체 남자 이름을 대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림1’에서 1992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여자 이름이 없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로, 갖고 있는 자료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워 중단하는 연구 아이디어가 많다. 혹시 독자 가운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좋겠다. 개략적인 출생지 정보가 함께 있다면, 이를 이용해 서로 다른 지역의 이름 변천사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영자’라는 이름이 1930년대 강원도에서 시작해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전파됐다는 식의 얘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척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서양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서로 성을 뺀 이름만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아인슈타인은 성을, 갈릴레오는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아인슈타인과는 덜 친하고, 갈릴레오와는 더 친해서는 아니다(사실 갈릴레오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보다 배우기가 쉽긴 하다. 물리학 체계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뒤질 게 없지만).
갈릴레오가 살던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성씨 사용이 아직 정립되지 않아 사람들은 자신을 칭할 때 주로 이름만 말하거나 (갈릴레오처럼) 이름 뒤에 어디 출신인지를 붙였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 지역 출신 레오나르도라는 뜻이다. 이후 이탈리아에 성씨 사용이 정착한 뒤 비로소 갈릴레오 이름은 공식적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름+성씨)가 된 것이다. 우리가 그를 보통 갈릴레오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그렇게 칭했기 때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