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기업이 빌딩이나 공장에 설치한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밤새 저장한 싼 심야전력을 한낮 피크시간대에 내다 팔 수 있게 된다. 기업의 ESS 설치를 유도하기 위해 피크시간대와 심야시간대 요금차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기요금 체계가 바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창조경제 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에너지 수요관리 신시장 창출 방안’을 마련했다고 18일 밝혔다. 전력수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5배 이상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공급 확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건물이나 공장에 ESS를 설치해 요금이 싸고 전력 사정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심야시간대에 전기를 저장했다가 이를 낮 시간에 사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또 사용하고 남은 전기는 전력거래소에서 팔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지금은 발전소만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팔 수 있다.
정부는 우선 계약전력이 30만 kW 이상인 30여 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ESS 설치를 유도하기로 했다. 계약전력 1000kW 이상인 공공기관 1만8000여 곳도 권고 대상이다.
하지만 1MW(메가와트)급 ESS 설치에 12억∼15억 원이 드는 등 설치비용이 과도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정부는 여름 기준 피크시간대와 심야시간대 요금 격차를 현행 3.2배보다 더 확대하는 방안을 10월 전기요금체계 개편에 담기로 했다. 여름, 겨울 피크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높은 요금을 부과하는 대신 고효율 인증을 받은 ESS를 설치하면 투자금액의 3∼5%를 세액공제해 ESS 설치를 유도할 계획이다.
대규모 공장이나 건물에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구축을 유도하기로 했다. EMS는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냉난방 출력 등 전력 사용을 원격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EMS 설치를 절전 효과를 내는 현금으로 보상하기로 했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에 평균 6억∼10억 원이 드는 EMS 구축비용의 최대 50%를 지원하기로 했다.
가전업체에는 주요 가전제품에 ‘스마트플러그’를 내장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일반 가정은 에어컨, 냉장고 등에 내장된 스마트플러그를 통해 전기사용량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이번 방안을 마련한 것은 전력 수요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데 전력 공급 확대는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력발전소를 더 지을 수도 없고, 경남 밀양의 송전탑 갈등에서 보듯 발전기기 건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수요 조절에만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ESS, EMS 설치를 확대하기 위해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가정에서 높은 전기요금을 받아 산업계에 인센티브로 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수요를 관리하면서 전력 공급도 계속 확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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